맞아. 나 후쿠오카 살고 있었지.
뜻하지 않게 여행 콘텐츠 자료를 만들 기회가 생겼다. 타이밍 좋게도 이번 주는 새해 연휴 대체 휴무로 출근도 거의 안 하게 되었는데, 최근 급격히 추워지더니 이곳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눈이 오기 시작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대체로 아지트에서 글을 쓰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집에서는 잘 집중이 안되니 눈이 오지만 평소처럼 아지트에 가서 글을 쓸지 아니면 집에서 작업을 할지. 결국 집에서는 작업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노트북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 아지트로 갔다. 좋은 선택이었다. 눈 덕분에 평소보다 사람은 적었고, 일상적이지 않은 바깥 풍경도 좋았다. 작업이 썩 잘 된 지는 모르지만;
자료도 조금 만들고 예정된 일들을 하다 보니 아이 하교 시간이 되었고, 계획에 없던 하교 후 일정을 갑작스럽게 정했다. 아이를 데리고 자료에 필요한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해야 할 일은 빨리 해치울수록 안심되고, 내일은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일지도 모르니깐. 집돌이 아이는 웬일인지 흔쾌히 따라나섰고(이동 중에 주어지는 태블릿과 닌텐도에 혹했는지 모른다), 덕분에 바로 하카타(博多)행 열차를 타러 갔다.
평소에 그냥 우리 동네에 사는 나는 하카타(博多)에 나갈 때 종종 깨닫는다. 맞아. 나 후쿠오카 살고 있었지.
시간과 동선이 잘 맞아떨어져 사진 촬영과 정보 수집은 비교적 수월했고, 아이와 함께 다녀서 좋았다. 아이는 어느덧 부쩍 자라 보호자 개념이 아닌 동반자 개념으로 함께 다닐 수 있었고, 아이와 함께 하니 일의 한 부분이 고독함이나 지루함 보다는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겨져 그것도 좋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어느덧 밤이었고, 가끔 독특하거나 새로운 요리에 꽂히는 남편은 타이밍 좋게 알록달록한 배추전골을 만들고 있었다. 딸기 탕후루와 더불어.
그런 날이 있다. 나와 상황과 다른 이들과의 모든 타이밍은 타이밍대로 어긋나고, 몸은 지쳤으며, 피곤하고, 기분은 썩 좋지 않고, 새롭지 않은 일상은 지루하거나 무료한 날. 어쩌면 대부분 많은 날들이 앞서 언급한 조건들을 한두 개씩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날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번씩 그런 날도 있다. 앞서 언급한 조건들이 모두 비껴가고, 새로운 경험과 기분 좋은 비 일상이 타이밍 맞게 만나는 날. 드물지만 그런 날의 힘은 나름 강력해 얼마간의 일상을 견인하기도 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의뢰받은 자료를 만드는 경험을 하고, 덕분에 아이와 짧은 여행을 다녀왔으며, 일상의 연장선상으로 새롭게 일을 접해보고, 일상도 괜찮았던 날. 비록 눈이 와서 내일은 아이의 학교가 휴교일 지언정(ㅠ) 오늘 쌓은 견고함 한 가닥에 기대어 내일과 당분간을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놓아두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자. 글을 잘 쓸 것. 그리고 의뢰받은 일을 잘 해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