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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절

보편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by 수진

결혼 후 삶을 이루는 몇몇 부분들이 재구성되었는데, 하나는 존재감이 선명해진 명절이었다. 명절은 어려웠다. 그 어려움은 명절 음식 마련이나(제사를 주관하지 않고 참석하는 입장이라 음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때로는 여행길이 그보다 멀 수 있다.)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적응하는 부분에서 비롯된 부분이 컸다.

결혼으로 새롭게 며느리, 제수씨, 동서, 누구(남편 호칭) 와이프등의 정체성이 추가되었다. 남편의 원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위 직책을 가진 이에게 기대될지 모를 전형성에 관해 조금 고민했고, 어쩌면 그래서 명절은 어려웠다. 적절한 답을 채 찾지 못하고 일본으로 왔고, 명절과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일본에 온 뒤 명절에서 비롯되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졌을까? 그럼에도 그렇지 않았다. 명절과 물리적으로 멀어졌지만 마음 한쪽은 그 기간에 맞춰 묶여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명절을 보낸 뒤 명절에서 비롯된 마음이 종료된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명절이 끝나도 명절 기간이 지나갔을 뿐 무언가를 마치고 종료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에 위치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안부 전화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느꼈던 부채였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을 바에 생각에서 지우는 편이 현명할 테지만.

일본은 한국과 명절이 달라 한국 명절기간 동안 이곳은 평일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무게와는 별개로 표면적으로 평일처럼 지냈지만, 가족들의 방문으로 몇 차례 명절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길다고 볼 수 없는 결혼 기간 동안 지낸 적 없는 형태의 새로운 명절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명절은 덜 어려웠다. 무언가를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줄고, 이전보다 편안함과 즐거움에 관심을 둘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런 시간들이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채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거나, 추위를 뚫고 찜질방에 가는 일, 초밥을 먹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 규정된 관계보다는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여겨지는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직계 가족만 모였기에 복잡한 어색함은 줄고, 개인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명절은 무엇인가? 본질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편함'에 중점을 두자면 명절을 평일처럼 흘러 보내는 게 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때로는 편함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코 혼자 중심을 잘 잡는 부류가 아닌 나는 아이에게도 명절의 존재와 의미는 알려주고 싶다. 아이가 한국의 문화를 모르고 자라는 것을 바라지 않기에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아마 지속적으로 적당한 답을 찾아가야 하겠지만, 규정된 명절에 흡수되는 형태가 아닌 새롭게 무언가를 규정해 갈 수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금 여건에서 취할 수 있는 이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명절이면 찾아오는 뒤섞인 마음들을 한 번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조금 드러난다. 나의 명절의 중점은 '자발적 만남'과 '즐거움'에 있겠다는 것이.

KakaoTalk_20250129_235616672.jpg 새해(1월 1일)가 명절인 일본에도 세뱃돈(お年玉)과 비슷한 개념의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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