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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자신을 만나러 가는 일

by 수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모르는 먼 곳에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아는 사람이 살고 있는 상상을. 좀 더 구체화시키면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닌 조금 친한 사람이. 아니, 일부러 만나러 갈 정도면 친함을 넘어 좋아하는 사람이.

즉,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먼 곳에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바람을 가진 적이 있다.(지금도 갖고 있다.) 어느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남의 이유는 힘듦이나 방전 일수도 있지만 굳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떠나고 싶을 때, 그럴 때 그곳에 가는 거다. 당장 떠남을 구체화하지 못해도 떠나고 싶은 날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로 위안이 되는 곳.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는 내가 있는 곳이 그런 곳인 듯하다. 아마도.

후쿠오카는 한국에서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가끔 한국에서 누군가 올 때가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날 정도로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보통 일본여행은 주말 포함 3-4일 정도로 짧게 오기 때문에 상대의 일정을 고려해 번화가인 하카타(博多) 주변에서 만나지만, 직계 가족이나 친척 등 우리 집에 하루이틀 묵을 겸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비주류 지역을 선호하는 나는 우리 동네를 애정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때 짧은 여행기간에 굳이 (한적한) 이곳에 온다고?라고 여기곤 했는데 방문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비슷했다.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어.'라는 반응.

잘 안 알려진 지역에 사는 일은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역에 사는 일.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나로서는 '안전하다'는 느낌과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사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떠한 의도가 반영되었다기보다는 아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부분인 듯했다. 겪어보지 않은 환경을 접하고 한국인이 없는 곳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며 그동안 몰랐던 자신이 되는 일. 새로운 자신의 모습이 주변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 편안하다고 느껴져 '안전하다'라고 감각하는 마음. 그러한 새로운 나를 발견한 부분이 지금의 삶에서 건진 성과 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곳을 방문했던 몇몇 지인들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기에 이곳이 좋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 고요하고 잠잠한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마 관광지에서 느꼈던 마음과는 결이 달랐을 테니깐. (결론짓기 이르지만 이곳에 오면 대체로 차분해질 확률이 높다. )

KakaoTalk_20250212_233037758.jpg 일터 앞마당

그런 인연이 있다. 특별한 접점은 없어도 왠지 마음으로 끌리는 사람.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않아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인연.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도 나랑 비슷한 결을 가졌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람. 그런 인연과 연락이 닿았고 그는 (아마도) 내가 어딘가 누군가 있는 곳으로 막연히 떠나길 원했던 것처럼 후쿠오카행을 계획했다.

-우리 하카타(博多)에서 만날까?

-아니요. 사시는 지역이 어디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

그 친구와의 만남은 아직이지만 조금은 예감할 수 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오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만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역시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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