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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그리운 시간

자신 사용 설명서

by 수진

혼자 있고 싶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카페다. 적당히 넓어 익명성이 보장되고, 의자도 적당히 안락한 그런 카페. 물론 커피가 맛있으면 좋지만 커피맛과 공간의 안락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면, 공간의 안락함을 택하고 싶다.

그런데 일본 우리 동네에 오니 공간을 고르기는커녕 카페 자체가 귀하다. 오전 시간 자주 아지트로 이용하는 곳이 한 곳 있지만 그곳의 정체성 자체는 카페보다는 베이커리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이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늦은 오후 시간 카페에 가고 싶을 때 생긴다. 장소를 고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문을 일찍 닫기 때문에 장소 자체가 없다.

그나마 한 곳이 있긴 하다. 근데 거기는 공간도, 공간의 주인도 개성이 지나치게 강하고(공간은 역시 공간의 주인을 따라간다.) 의자 등받이가 없으며 연령이 있으신 동네 분들의 사랑방 느낌이어서 혼자의 시공간이 필요할 때 찾고 싶은 장소는 결코 될 수 없었다. 음악도 너무 이국적이고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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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되는 동네 카페

그럼에도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늦은 오후 카페가 '몹시' 가고 싶은 날. 고민하다가 문득 드링크바(ドリンクバー)가 있는 곳을 떠올렸다. 자전거를 달려 한번 가봤다. (아쉬운 대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공간은 넓고, 한적하고, 비교적 조용했으며 정체성은 레스토랑이지만 커피맛도 나쁘지 않았다. 기계가 내려주는 평준화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딱 그 커피 맛. 나쁘지 않은 무난함을 품은 모나지 않은 맛. 아무것도 안 하고 커피만 한 모금 마셨는데 벌써 조금 안심되는 기분이다. 음악도 잔잔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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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멍 때리기에 차라리 편했던 곳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도 혼자의 시간도 적당히 안배해 잘 누리는 것이 삶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 같고, 혼자의 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편안함을 느끼는지 많이 아는 정도도 삶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나에 관해 많이는 모르지만 일단 가끔은 혼자만의 카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무언가 비었는데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는 마음을 충전해 주는 그런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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