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간 담배를 받으려면 내 이름은 알아둬야지. 나는 장성우야......" -김별아,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작가의 소설 '가미가제 독고다이'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일본명 '시게미쓰'로 불리고 자신을 시게미쓰라 소개하던 장성우가 (죽음을 향해) 떠나며 주인공에게 담배를 빌려 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본명을 말하는 장면이었다. (참고로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쓰인 책이다.) 소설 내내 가차 없이 인간미 없게 행동하고, 군사 훈련을 받는 기간 모든 것이 뛰어나던 장성우에게 나는 그 대목에서 인간적 연민을 느꼈다. 그 역시 장성우라는 자신을 놓지 않고 살았을 것이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놓을 수 없었던 것 같아서.
그런 걸 보면 유독 마음에 꽂히는 부분에서 마음이 향하는 곳이나 관심사가 드러나는지 모른다. 자신으로 사는 일은 무엇인가?
에메랄드는 5월의 탄생석이니까. 그리고 신조 교코는 5월에 태어났으니까. 교코는 자신의 진짜 탄생석으로 만든 반지를 받길 원했던 것이다. 결혼반지로. -미야베 미유키, 화차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도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동명의 영화로 개봉했다.) 소설 속 주인공 '신조 교코'는 자신의 불행한 삶을 비관해 다른이(세키네 쇼코)를 죽여 신분을 갈취해 그의 인생을 살면서도 결정적 순간(결혼)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 한다. 타인의 신분으로 결혼하면서도 결혼반지만큼은 자신의 탄생석을 원하는 모습에서 나는 그 마음의 본질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표면적으로 자신을 버렸을지언정 끝내 스스로를 놓지 못했던 것이다.
소설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나는 그 본질은 알 것 같다. 버리고 부인하고 타인의 삶을 살아도 결국 자신을 놓을 수 없는 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 자신으로 사는 일이 참 버겁다고. 나로 사는 일이 감사하고 내가 나여서 다행이라 여기는 날도 많지만,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날도 있다. 자신으로 사는 일이, 그리고 '사는 일'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날. 어제도 조금은 그런 날이었다. 사는 일이 그렇듯 바닥으로 내려가려다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기분에 따라 다시 괜찮아지지만. (그래서 감정 기복이 덜 한 사람이 가끔 많이 부럽다. 타고난 부분이 강하니 비결은 없겠지만. )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껴안고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일. 자신을 믿고 다시 나아가는 일. 이날까지 살아왔던 시간들을 보며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주는 일. 그 방법뿐 아닐까. 어떤 삶이라 해도, 자신이 사는 자신의 삶이 아닌 이상 스스로에게 의미 있지는 않을 테니깐.
그냥 삶은 엄청난 장기 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코 완성도 머무름도 없는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 쉼 없이 매일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그래서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희망이 있다. 잘못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고침이 가능하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과 감정이지만 그래서 이 순간의 결론은 그럼에도 나는 나로 살기를 택하고 싶다. 표면은 물론 마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