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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26. 2022

군인 시절의 체력단련

다시 군인이 된다면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고, 그즈음 읽은 한 권의 책을 계기로 운동을 생활화하고자 마음먹었다. 실행은 빠를수록 좋으니 곧 달리기를 시작해 2년 전 가을밤부터 달리기의 세계로 접어들었고, 생각보다 괜찮아서 지속하기로 했다. 특별히 장거리를 달리는 게 아니고 동네를 달리는 정도로 가볍게 달리니 몸의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늘 달릴 수 있는 상태로 몸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성과라 여기기로 했다. 달리기로 시작한 운동은 근력운동으로 이어졌고, 매일 오전 시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 3월 가족들과 일본으로 이사오며 달리기 습관도 함께 데려와 지금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일본의 한적한 동네를 달리고 있고 그런 내 모습을 좋아한다. 운동은 앞으로도 오래 데려가고 싶은 습관이다. 몸이 달리는 느낌을 기억해서일까? 달리다 보면 군 시절이 떠오른다. 

 군인 시절의 체력단련은 의무였다. 목적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겪었던 군 시절의 체력 단련은 체력검정을 위함이었다. 후보생 시절에는 임관을 위해, 임관 후에는 자격 유지를 위해 체력검정을 받았다. 종목은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1.5km 달리기의 세 가지였고, 달리기 거리는 후에 3km으로 바뀌었다. 후보생 입소날의 일이다. 입교에 앞서 배웅하러 함께 오신 부모님들과 함께 3사관학교 강당에서 입소 설명회를 들었다. 설명회에서는 후보생들의 입소 전후의 체력 변화가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되어 있었다. 입소 시 1.5km를 몇 분에 달리고, 윗몸일으키기를 몇 개 하고, 팔 굽혀 펴기를 몇 개 하던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고 임관을 앞두고는 전원 특급 체력을 갖게 되는 체력변화를 그래프로 볼 수 있었다. 그 변화 과정의 고통스러움에 무지했던 나는 결과만 보고 나 역시 입소하면 곧 특급 체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마치 외국에 살면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것이란 정도의 생각일까.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여지없이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므로. 

 입소 후 현실을 모르던 나의 착각은 가차 없이 깨졌다.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특급체력을 갖게 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고단한 체력단련의 시간을 아침저녁으로 겪었다. 아침 점호 후 도수체조로 몸을 풀고 달리기를 하고, 차오르는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아침부터 이미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상태로 졸음과 싸우며 학과 수업을 듣거나, 야외 훈련을 받고 오후가 되면 다시 연병장에 모여 아침의 그 과정을 반복했다. 체력단련을 쉴 수 있는 날인 비 오는 날은 어쩌다 한차례였고, 그마저도 조금씩 내리는 비에는 달려야 했으므로 체력단련을 거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주말에는 달리는 거리를 늘려 외부까지 나가서 달리다 돌아왔고, 1.5km로 시작한 달리기를 3km, 5km, 8km 늘려가다가 나중에는 느리지만 10km까지 달리게 되었다. 반 강제적으로 체력단련에 임한덕분에 임관을 앞두고 체력검정 기준에 전원 특급이 나올 수 있었고, 후보생들 중 체력이 가장 바닥이었던 나조차 특급 체력인 상태로 임관을 할 수 있었다.

 임관 후 이제 체력단련은 끝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이제는 각자 생존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적 체력단련이 없어졌을 뿐 스스로의 체력은 알아서 관리해야 했고, 1년에 한 번 정기적인 체력검정과 비 정기적인 불시 체력검정으로 그 결과를 증명해야 했다. 대전에서 병과 교육을 받던 초군반 시절만 해도 나름 괜찮았다. 임관 직후라 열정과 체력이 있었고, 17시면 학과 수업이 종료되어, 영내 운동장을 달리고 동기들과 구기종목 등의 운동도 병행하며 체력을 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대로 전입하자 체력관리는 바로 뒷전이 되었다. 격무와 야근이 일상인 상황에서 스스로의 체력을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를 가지고는 힘들었다. 업무 마치고 야근 전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서 틈틈이 체력 단련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여건도 못 되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기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하듯 체력단련 또한 체력 검정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이루어졌다. 체력검정 며칠 전부터 고통스럽게 달리기를 하고, 윗몸을 일으키고 팔 굽혀 펴기를 연습했다. 검정 전날은 행여 다음날 힘들까 봐 저녁은 적게 먹었다. 현역에 있는 이상 연 1회 체력 검정 합격은 의무였으며 진급과 장기에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항목이었다. 물론 불합격이라도 합격 시까지 재검정의 기회가 주어져 결국에는 합격하겠지만, 질병이나 출산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 불합격 판정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체력검정을 앞두고는 모두 적잖이 긴장했다. 나 역시 현역 시절의 체력검정은 우수한 급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매번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체력 단련의 실질적 효과는 누리지 못했다. 마음에 부담감만 얹혀있었을 뿐 그것이 평소 꾸준한 체력단련과 연결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체력검정을 끝으로 전역을 하며 이제는 체력단련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으며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기 전까지는... 지내보니 체력과 건강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내서 달리고,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스쿼드를 하고.. 운동을 거르는 날이 이틀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 몸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만약 지금 아는 것을 군생활 간에도 알았더라면, 이 마음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야근과 격무가 연속인 날들 속에서 과연 나는 포기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운동할 수 있었을까. 다시 군인이 된다면 나는 주말을 활용했을 것이다. 비록 체력검정이라는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체력은 중요하므로 나는 기꺼이 나를 위해 주말을 활용해 달리고, 근육을 관리하며 체력을 다져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체력단련은 고통스러웠겠지... 이 시간 열심히 체력단련에 임하고 있을 군인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발행한 글 중 하나가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많아서 보니 브런치 메인에 얼마간 있었다. 감사하면서도 글을 쓰는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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