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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30. 2022

정신과에 방문한 날

만약에 그랬다면

 전역을 앞둔 마지막 봄이었다. 마음이 추웠는지 실제 추웠는지 확실치 않지만, 겉옷을 입고 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니 봄의 초입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마침내! 마침내 정신과에 방문하기로 했다. 타인의 정신과 방문에 대해 색안경을 끼지 않는다. 잘 아는 타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마음이 힘들면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여기고, 특별히 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무슨 이중적 잣대인지 스스로가 그곳을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검열했다. 정신적 문제의 부정적 잣대를 들이대며 그 정도로 많이 우울한지 꼭 가야만 하는 건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마침내 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웃음을 거의 완전히 잃었고, 삶의 의욕도 없었다. 초임장교 시절의 어느 날이 생각났다. 당시 나에게 군생활에 관해 인수인계해준 선배는 무척 재밌는 사람이었다. 핵심을 놓치지 않고 설명해 주면서도 적재적소에 유머를 끼워 넣는 위트가 있었다. 나는 늘 정신없이 웃었고, 나중에는 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엄숙하거나 진지해야 할 순간에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 다른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그는 말했다. 웃으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웃을 수 있을 때, 웃음이 나올 때 웃으라고. 당시는 웃으며 넘겼던 그 말이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며 군생활 가운데 나는 종종 그의 말이 떠올랐다. 웃을 수 있을 때 웃으라는 말. 어쩌면 그는 이미 경험했기에 알았던 것일까.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날이 찾아올 수 있음을... 어느 날부터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비교적 즐거운 분위기에서도, 가벼운 분위기에서도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보편적인 말을 끌어당겨 대뇌이며 억지로 웃으려 노력해도, 웃는 얼굴을 간신히 만들어 낼뿐 도무지  마음이 기뻐서 자발적으로 웃는 것이 뭔지, 좋아서 웃는 게 뭔지 낯설정도로 나는 웃음을 잃었다. 나는 우울에 완전히 잠식당해 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가기 힘들다 여겨져 마침내 정신과를 방문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드디어 날을 정했다. 오늘이다. 오늘 정신과에 방문하자. 비장한 마음가짐에 비해 행동은 소극적이었다.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어 차마 반차를 내지 못하고 업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야근이 있으면 못 가므로 야근이 없기를 바랐고, 아무도 몰래 가야 했으므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드디어 업무 시간이 종료되었다. 빠르게 인사하고 부대를 빠져나와 차를 몰고 미리 검색해둔 시내의 한 병원으로 향했다. 최대한 서둘러서 이동했으나 원무과에 접수하려고 보니 이미 진료 종료 10분 전. 늦었으니 다시 방문하기를 권유받고 무슨 일이냐는 의례적인 물음이 들려왔다. 퇴근을 앞둔 직원 앞에서 나는 우울해서 상담받고 싶다는 답변을 작은 일로 포장해서 내놓았고,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섰다. 마음만 먹으면 다음날이라도 갈 수 있었겠지만 나는 결국 다시 가지 않았다. 마땅히 설명할 이유는 없으나 가고 싶어서 그곳에 갔듯, 가고 싶지 않아서 다시 가지 않았다. 물론 우울감에서 놓여난 것은 아니었다. 우울감은 한순간에 떠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뒤로도, 그리고 전역하고도 꽤 오랫동안 그 감정에 붙들려 지냈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나를 찾아왔듯, 서서히 나를 떠났다.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기에 전역 후로 꽃길만 걸은 것은 물론 아니었고, 우울함이 다시 찾아온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살아가면서 다시 웃을 날이 과연 찾아올까 싶게 깊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울에 빠질 때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기를 희망한다. 

 문득 궁금하긴 하다. 그날 내가 만약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과연 어떤 처방을 받았을까. 그리고 나의 증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일까. 나는 웬일인지 이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오늘의 글과 어울리는 날씨.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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