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즈이어의 다정한 수다
삶으로 글을 쓰는 이가 있다. 투명하고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내는 스스로의 삶이 문학의 뮤즈가 되는 삶. 진실된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 박정옥 저자는 삶으로 글을 쓴다.
나도 빌리처럼. 이 책은 다정하고 애틋하고 슬프고, 아름다웠고... 재밌었다. 책이 웃겨서 커피를 뿜은 것은 처음이었다. 잔잔한 웃음도 있지만... 큰 웃음도 있는 책. 잔잔하게 흐르지만 그 잔잔함의 결이 '속삭임' 보다는 '수다'에 가까운 책. 그래서 따뜻한 책. 박정옥 저자의 '나도 빌리처럼'을 읽으며 느꼈다. '나도 당신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유연하고 고착되지 않는 성정.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타야 할 것 같다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책을 늦은 밤 틈틈이 펼쳐 아껴 읽었다. 읽는 동안 다양한 감정들이 찾아왔고 무언가 많이 그리웠다. 그럼에도 마냥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저자의 화법 덕분일 것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수다를 떨다가 (의도한 것일까?) 어느 순간 훅 파고드는 화법. 언뜻 섬세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무척 섬세한 저자의 말들을 감싼 포장지는 슬픔이나 어두움이 아닌 위트였기에 읽으며 기분이 나아졌다. 어두움을 모르기에 구사하는 천진난만한 위트가 아닌 삶의 수많은 얼굴을 겪고 뛰어넘은 이가 구사할 수 있는 고차원이지만 무해한 위트. 이 책은 그러한 언어로 쓰인 책이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인 이 책을 찬찬히 읽고 있는 이유는 내게는 귀한 물성을 지닌 책인 이유도 있지만 저자의 다정함 속에 오래 머물고 싶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내어주는 다정한 시간이 좋아 산만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아 이 책을 찬찬히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한편으로 글을 쓰고 싶은 이유에 관해. 나는 왜 쓰는가. 마침내는 타인에게 가닿고 싶어서. 가닿기 위해서. 나는 그 마음으로 쓴다. 이 책은 그 부분에 충실한 책이었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이도 직업도 생활 여건도 전혀 다른 저자의 삶에 빠져들었고 공감했다. 때로는 아주 깊이 공감했다.
p.18 나도 프랑스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었다. (중략) 오십 대 중반에는 무슨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일까? (중략) 문학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갈망이 떠올랐다.
P.41. 나도 책 속의 소년이 노인에게 얘기한 것처럼 말해 주고 싶다. 물고기에게 진 게 아니라고. 사실은 크게 이긴 거라고.
p.68. 이 녀석. 지 꿈은 소중하고 엄마 꿈은 그냥 간직하고만 있으라고? 이 나이에도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주마.
담담한 문장. 검은 글씨로 인쇄된 문장들에 담긴 뜨거움을 알기에 뭉클하고 울컥했다. 성실한 삶의 여정은 어떠한가? 그가 성실하게 첼로를 배운 시간. 아이가 호랑나비를 길렀던 여정. 아들이 철인(鐵人)이 되던 여정. 미국에 계신 엄마의 사랑... 잔잔하고 고요한 에피소드들은 여운이 짙었다.
내면의 강인함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바라왔다. 강인한 마음을 지닌 자신으로 사는 일 자체로 든든한 삶.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 마음을 자주 가로막던 것은 낙심이고 우울이었다. 삶이 막혀 있는 것 같은 날. 자신감과 의욕이 사라지는 날. 마음이 바닥을 파고드는 날. 이 책은 그런 날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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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알려줄 것이다. 당신 안에 있는 아주 미세한 긍정의 씨앗이라도 저자는 찾아내 힘을 실어줄 것이다. 말뿐인 격려가 아닌 진심을 담은 자신의 언어로.
잠시 낙심해 있지만, 곧 일어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과 저자의 글을 권한다.
덧. 앞표지에 쓰인 '동네 공인의 꿈'에서 공인을 막연히 소상공인(工人)이라 추측했는데, 책을 읽으며 '공인(公人,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동네 공인'은 내게는 그만큼 생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