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오래전 차인표 작가의 글을 읽었다. '오늘 예보'라는 작품이었다. 좋았다. 잔잔하지만 어떤 힘이 담긴 책이었다. 이제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의 작품에 담겼던 힘은 내게 '위로'로 읽혔다. 서서하고도 잔잔한 위로. 위로가 필요했던 시간이라 더욱 그렇게 읽혔을지도 있지만 그 작품이 좋아 연달아 그의 책을 읽었다. '잘가요 언덕'이었다. 많이 놀랐다. 절절하게 아름답고 슬픈 책이었다. 한동안 그 마음에 사로잡힐 정도로.
알려진 사람으로 그를 수식하는 모든 것을 떠나서 그냥 한 작품으로 한 명의 작가로 그가 그린 작품세계는 아름다웠고 귀했다. 그렇게 작가로서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좋은 글은 반드시 누군가의 눈에 띈다. 그가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애달퍼하며 10년 동안 기획해서 마침내 써낸 책 '잘가요 언덕'은 어느 순간 잠잠했지만, 뒤늦게 다시 빛을 보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개정되어 다시 출간되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필독서로 선정되었고 그는 초빙 강연까지 다녀왔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강연하던 날 공교롭게도 일왕 부부도 방문해 그는 일왕이 있는 옆 강의실에서 강연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 묻고 용서에 관해 말한다. 사람이 얼마나 찬란하고 귀한 존재인지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밀하게 그려낸다.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용서는 백호가 용서를 빌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엄마별 때문에 하는 거야.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쓸모는 무엇인가. 차인표 작가의 글을 읽고 느꼈다. 어떤 일은 반드시 소설을 통해 이야기될 수밖에 없겠다고.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아름답고 강력하게 그려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는 세상을 납작하게 보지 않는다. 위안부 그리고 일본군. 이미 어떠한 이미지가 전형화된 호칭이 가리키는 인물들은 결코 그 단어로 평면적으로 표현될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다. 개개인이 얼마나 찬란한 존재인지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위대하고 사람답게 하는지 그는 정성껏 그려낸다.
"순이 씨,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당신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소설 속에서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일본군 장교를 통해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들려주고 싶던 말을 전한다. 채 제대로 쥐어보지도 못한 삶을 빼앗겨버린 그분들의 삶의 고귀함을 그는 절절하게 알았기에 연민과 분노로 이 작품을 썼으며 그럼에도 결코 분노만을 담지 않았기에 보석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빠르게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아름다운 방식으로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문학의 힘 아닐까.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 소식은 제가 앞으로 계속 소설을 써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정말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기는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더 겸손히, 깊이 쓰겠다."-차인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