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주방에서도 생명력이 피어난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 아침이다. 좀 더 뒤척일까 고민하다 냉장고에 있는 푸릇한 부추가 떠올라 일어나기로 했다. 부침개를 생각했는데, 타이밍 좋게 비가 내릴듯한 날씨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부추를 한 줌 씻어 가위로 적당히 잘라 양푼에 넣고, 텐푸라(天ぷら, 일본식 튀김)용 가루와 가루가 녹을 정도의 물을 넣고 버무리면 반죽이 완성된다. 텐푸라가 유명한 나라답게 바삭함을 자랑하는 이곳의 텐푸라 가루는 무엇을 넣고 구워도 맛있다. 반죽의 계량도 눈대중으로 적당히가 가능하고, 무슨 재료든 허용되는 너그러운 부침개는 결과물에 실패가 없고 맛도 좋아 내게는 무척 친절한 성정(性情)을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조금씩 부침개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튀는 자잘한 기름방울을 보는 것은 (많이) 고통스럽지만, 가급적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기를 택한다. 밤새 고요하고 적막해진 집안에 부침개 굽는 냄새가 감돌자 문득 생명력이 느껴졌다. 열정적이지 않은 사용자를 둔 우리 집 주방에서도 생명력이 피어난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이다.
부지런한 엄마를 둔 덕에 늘 밥 짓는 소리와, 요리의 온기로 아침을 맞이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온기가 '우리 집'을 진정 '우리 집' 답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그 온기를 피워내는 법이 내게도 스며 있었다는 걸 엄마를 떠나 요리하며 깨달았다. 정성스레 만들어진 요리를 앞에 두면, 요리는 만든 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여겨질 때가 있었는데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해보니 알겠다. 어떤 요리는 먹기 위함이 아니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오늘의 부침개가 그랬다. 사방으로 튀는 기름을 외면하고, 아침의 여유를 보류한 채 부침개를 만드는 일은 나를 위해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부침개를 좋아하는 얼굴이 떠올라 나는 다른 것을 포기하고 부침개 만드는 일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침개를 구웠다. 첫 장은 부추만 넣어서, 다음장은 김치를 섞어서, 마지막 장은 팽이버섯을 섞어서. 그래도 부추가 남아 전날 만들어둔 오이 무침에 함께 버무려 사이드 메뉴를 만들었다. 여름오이의 아삭하고 상큼함이 부침개의 무거움을 보완해 줄 수 있도록.
잘 구워진 다양한 부침개 세트를 먹기 좋게 잘라 포장했다. 소중한 나의 아침시간이 형상화된 그것을 남편의 출근길에 선물로 주었다.
부침개 만들기를 끝내고, 반복되는 아침의 루틴들을 감당하고 비가 내리기 전에 달리기까지 마쳤다. 숨을 고르며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어디선가 서툴지만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보니, 이제는 나의 친구가 된 이웃이 저 위에서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성실히 살아가는 날동안 타국에서 차곡차곡 일구어지고 있는 생생하고 충만한 나의 세계가 선물 같아서 마음이 뻐근할 정도로 감사함이 드는 아침이었다.
덧. 일본에서도 부침개는 제법 보편적이다. '지지미(チヂミ)'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부침개는 식당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정통 한국식과는 다르지만 도톰하고 바삭해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