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는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소설을 써본 경험을 갖고 있다. 바로 자기소개서라는 소설 말이다. 남들과 별다를 것 없이 살아온 자신의 짧은 인생을 의미 있는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창작자 못지 않은 산고의 고통을 느끼며 한 편의 자기소개서를 세상에 내놓는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 제법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면접관으로부터 내 자기소개서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별 거 아닌 이야기들을 감동적으로 엮어내는 데 재주가 있었다. 한 번은 여동생의 자기소개서를 손봐준 적이 있는데, 너무 거창해서 못 쓰겠다는 답을 들었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때론 단점이 될 수 있는 사건까지 장점으로 내세워 한 편의 짧은 대하드라마를 만드는 것, 그것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나만의 팁이다.
그런 내가 자기소개서를 쓸 때 가장 곤욕스러웠던 부분이 ‘지원동기’였다.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세상에 정말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한 가장 흔한 방법으로 취업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렇다고 “생활비가 필요해서 지원했습니다.”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우리는 지원하는 회사의 창립목표와 인재상 등을 컨닝하여 그럴 듯한 지원동기를 쓴다.
“교육이야말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치로운 일이라고 믿기에 ○○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좋아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에서 나는 일을 잘하는 축에 속했다. 특별히 맡은 일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성향에 맞지 않는 일을 맡았다고 해서 그것을 겉으로 티낸 적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맡은 일들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문제는 내가 하고있는 일에 나는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의미를 발견했다면 아마 퇴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선배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보곤 했지만 선배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지는 못한 것 같았다. 프로젝트 하나가 끝났을 때 느끼는 짧은 성취감과 보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미란 그렇게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들에 불과했다. 나는 이것만으로는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오히려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대개는 민원인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이었다. 이런 류의 감정은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우리가 하는 일들, 특히 근거 없이 상품과 고객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발언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소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회사를 나온 건 나였다. 나는 나의 부족한 소명의식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두 알지 못할 정도로 무수한 직업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직업들이 있기에 우리가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퇴근 후 영화를 보고 해가 저무는 종로 거리를 걸으며 뜨뜻미지근한 여름의 바람을 느끼며 걸을 때면 마주치는 모든 노동자의 삶이 궁금했다.
한동안 구두닦이 일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꽂힌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구두닦이가 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먹고 사는 일이 내가 아는 영역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그때 생겼다.
그렇다고 당장 구두닦이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것이 내게 그런 일이 되었다. 아니었다면 게으른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리가 없다.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까지는 못 되더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글들을 읽으며 위로 받았던 적이 있으니까.
파이어족, 경제적 자유, 일의 의미. 결국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와 괴로움, 고통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해방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지구 상에 살아갔던 그 누구보다 가장 행복을 바라는 인류로 진화했다. 그런 우리를 '호모 해피니쿠스'라 불러도 될까?
인간은 불확실한 행복을 택하기보단 확실한 불행을 택하는 존재라고 한다.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나 역시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이 문구를 쓰다보니 처음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은 꿈의 불확실한 성공가능성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는 거라고.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퇴사를 통해 그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나의 퇴사에 그가 일조한 셈이다.
재테크를 시작했든, 파이프 라인을 늘렸든, 이직을 결정했든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해질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호모 해피니쿠스'가 될 자격이 있다. 부디 우리의 도전이 성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호모 해피니쿠스'로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