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고 싶었다'라는 문구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제일 먼저는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씁쓸함은 다시 두 갈래길로 나누어진다. 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의 벽을 깨닫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반해 '여전히 되고 싶다'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 또한 존재한다. 어리석고 순진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파이어족이란 사회생활 초반 십여 년간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조기은퇴 후, 그 돈을 안정적으로 재테크하여 일하지 않고 최소생활비를 마련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우리는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자신의 꿈을 찾아나서는 데 쓸 수도 있다. 파이어족이 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파이어족이 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건 근검절약이 몸에 밴 생활습관 때문이었다. 퇴사 전 각종 수당을 포함한 나의 연간소득은 4천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월급 285만원을 받으면 각종 세금이 40만원 넘게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도 연간 2천만원 이상을 저축할 정도로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았다. 이렇게 살다보면 조기퇴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사람은 쉽게 갈고리에 걸려 넘어진다.
사회초년생에게 목돈이라고 할 만한 돈이 생기면서 돈을 더 불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테크에 무지했던 나는 서울 재테크 박람회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한 설문조사에 응하게 됐다. 설문조사 끝에 무료로 자산관리 상담을 받아보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재테크를 혼자 시작하기엔 겁이 났던 나는 한 번쯤 받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에 응했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자산관리 상담을 받은 곳은 업계 1위 자산관리 회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산관리사에게 투자상품 하나를 제안 받았다. 자산관리사는 레버리지 효과까지 언급하며 신용대출을 받아 투자할 것을 권했다. 그렇게 일 년 사이에 투자금의 규모는 처음의 몇 배로 커져나갔다. 당시 다달이 받은 이자 수익이 80만원 가량이 되었다.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조기 퇴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내 가슴 속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불과 일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유사수신이라는 낯선 단어를 처음 알게 됐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대표단의 재판이 시작됐고 대법원까지 간 소송이 마무리 되기까지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형사소송은 끝났지만 피해자들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았다. 무지로 전문가에게 맡겼더니 아니 한 만 못한 결과로 돌아왔다.
대박을 꿈꾸고 보다 높은 수익의 재테크를 바라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산관리사나 보험설계사를 믿지 마라. 여러 자격증을 내세우며 전문가임을 내세워 봤자 자신이 하는 일이 유사수신이라는 불법행위라는 것조차 몰랐다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그들이 받을 높은 수수료뿐이다. 자산관리사나 보험설계사가 소속 회사의 상품이 아닌 자신들만 아는 특별한 상품을 권한다면 그들과 관계를 끊어라. 나는 이 교훈을 얻기까지 7,100만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전재산을 모두 날리고 신용대출 받은 돈을 갚아나가는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다행히 근검절약하는 습관 때문에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일 년간은 대부분의 휴가를 재판을 따라다니는 데 썼다.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더 이상 재판을 따라다니지 않게 되었다. 내가 노력하면 뭐라도 될 거라는 생각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나는 재테크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예전보다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파이어족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하면 갈고리에 걸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 갈고리는 퇴사 후에 나타났다. 더 이상 수익이 없어진 상황에서 다달이 받는 이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평소 하던 P2P 투자를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플랫폼을 물색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업체를 살펴봤을 것이다. 회사의 규모도 살펴보고 소액투자를 하면서 믿을 만한 회사인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퇴사 후 수입이 제로가 된 상태에서 마음이 급해진 나는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한 업체에 1,800만원 이상을 투자했다. 그리고 투자하자마자 연체율 0%였던 회사는 사실상 모든 상품이 연체되는 총체적 난국이 되었다. 다달이 받던 이자수익은 이전의 절반 수준도 못 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재테크를 하지 않느냐고? 아니, 나는 여전히 재테크를 하고 있다. 국내 및 미국 주식도 하고 있고,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믿을 만한 플랫폼만으로 단촐하게 추려서 P2P투자도 하고 있다. 가진 돈을 그저 보관만 하고 있으면 백수인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생활비로 생돈만 날아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파이어족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언제가 됐든 어느 때가 됐든 나는 파이어족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미 파이어족일지도 모른다. 생활비로 가진 돈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퇴사 후 원하는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계속 새로운 꿈들을 꾸고 있다.
이 생활이 일 년에 가까워지면서 처음과 달리 조금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이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심지어 남동생은 내가 부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1억 가까운 돈을 날린 사람이 결코 쉽게 들을 수 없는 찬사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나는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 그게 아마도 내 꿈인 듯하다.
1억 정도 날린 사람도 이렇게 백수가 되어 허허실실 살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의 상황을 너무 비관하거나 걱정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와 여동생은 둘이서 내가 한강에 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내가 한강에 가지 않은 건 그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은 다시 모을 수 있다. 백수가 됐으니 좀 더 오래 걸리기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어야 다시 돈을 벌 수도 있고, 피해액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모든 일들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나는 가족들과 이 이야기를 웃으며 이야기한다. 단 한 사람, 아빠에게만은 몇 년째 비밀로 하고 있다. 아빠가 알면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 다들 쉬쉬 하고 있다. 아빠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