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P2P투자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투자후기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창 P2P투자 플랫폼들이 경쟁하듯이 이벤트를 벌이던 초창기에는 이자 수익보다 이벤트로 인한 수익이 더 많았다. 지금은 이런 이벤트들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돼버렸지만 글쓰기를 주저하고 있던 내게 어떻게든 글을 쓸 수 있는 시작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그리고 꽤 쏠쏠한 수입원이 됐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처음 글로 돈을 벌었던 건 영풍문고에서 진행하는 삼행시 이벤트에 참여해 경품을 받은 일이었다. 글을 지어 먹고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나에게는 사소하나마 즐거운 경험이었다. 관공서에서 진행한 짧은 글짓기 이벤트에 참여해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일도 있었다.
가끔 눈에 띄는 독후감 공모전에 몇 차례 참여하긴 했지만 상금의 규모가 큰 만큼 벽도 높아서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독후감을 쓰고 있다. 완성된 독후감은 문서 판매 사이트에 등록된다. 1차 목표는 100편, 최종 목표는 1,000편을 쓰고 등록하는 것이다. 솔직히 당장은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즐겁고, 가수들이 음원 저작권으로 돈을 벌듯이 나도 그런 수익을 만들고 싶어 퇴사 후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퇴근 후 평생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정사서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피곤에 절어 꾸벅꾸벅 졸며 들은 수업의 성적은 엉망이었고, 당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회사를 만족스럽게 다닐 때에는 이 자격증이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할 때나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역시 자격증은 퇴사를 했을 때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퇴사 후 일 년은 완벽한 백수로 놀고 먹을 줄 알았건만, 퇴사 전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던 집 근처 도서관에 단기근무자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냉큼 서류를 접수했다. 퇴사 후 불과 석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게 나는 한달 반 동안 주2회 근무를 시작했다. 급여가 적어 세금 한푼 떼지 않는 일이었지만 좋았다.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건 나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근무가 끝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우연하게 SNS 광고를 통해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드는 일을 알게 됐다. 호기심에 사이트에 가입해 여러 프로젝트 중 텍스트를 읽고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고작 2,200원을 벌었다. 그러나 보름쯤 지났을 때 고급작업자로 분류되었고, 작업량에 따라 월 3~400만원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고급작업자에 선정되자마자 나는 아빠에게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우쭐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만큼 벌지 못했다. 우선은 나의 건강상태가 일을 빠르게, 오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꾸준히 해오던 서평 활동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병행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세후 180만원 정도를 버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내 상태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내 상태에 따라 일을 조절해서 해도 괜찮은 일. 지금의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더욱 기쁜 일은 이곳에서 진행된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최우수상을 받아 상금 50만원을 받은 일이었다. 드디어 글을 지어 제대로 돈을 번 것이다. ZOOM으로 진행된 비대면 시상식은 우려와 달리 어색함보다 따뜻함과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즐비하던 서울을 떠나 중공업 중심의 소도시인 본가에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특히 경력을 살려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다시 또 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일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나의 속도에 맞춰 해나가도 괜찮은 것이다. 코로나로 남동생의 주짓수 체육관이 힘들었을 때, 아빠가 나 때문에 남동생에게 예전처럼 여유롭게 지원해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걸 엿들었을 때, 예전처럼 가족들에게 편하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을 때, 회사를 괜히 그만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알았더라면 회사를 계속 다닐 걸 그랬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을 때 엄마는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라고 반문했다. 그렇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이 망가져서 최대한 빠르게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나온 건 나였다. 여전히 집 밖을 나설 때면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하고, 기복이 좀처럼 잦아지지 않는다. 조금 살만해졌다고 시덥잖은 소리를 내뱉게 됐다. 이따위 생각을 할 바에는 앞으로의 길을 걷는 편이 훨씬 낫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따위 없어도 나는 죽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