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동료들과 모여 수다를 떨 때면 회사에 대한 험담이 단골메뉴처럼 쏟아진다. 그것은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어쩌면 회사의 역할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킨 사회생활 속에 동료들끼리 똘똘 뭉치기 위한 공공의 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직 후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일 년 뒤에는 퇴사할 거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그러고는 6년 넘게 다녔다). 회사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퇴사 스터디를 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했지만,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회사 다니는 게 그렇게 싫은데 왜 퇴사할 생각은 안 하세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욕할 뿐 '퇴사'라는 선택지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선택지에는 퇴사라는 선택지도, 이직이라는 선택지도 없었다.
"돈 때문이지 뭐."
쥐꼬리만한 연봉을 욕했지만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도 내뱉어지는 표현만큼 강렬하지 않아 보였다. 그저 푸념, 타인과의 교류에 불과했던 걸까?
퇴사인지 은퇴 후의 삶인지를 느리게나마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회사의 대우에 분노할 때 그 에너지가 치솟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분노가 사그러들 때쯤이면 퇴사에 대한 의지도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영원히 이 일을 하며 사는 걸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다. 이 잠재된 생각을 억누르는 건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다. 대부분 가정사일 때가 많다. 가정사에서 오는 최악의 스트레스가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를 차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시하는 남편을 가졌다거나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는 가족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는 경우. 이런 상황에 놓이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정도는 견딜만한 것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돈까지 주면서 숨 쉴 구멍을 마련해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 역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이상 퇴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회사는 전쟁터고 그 밖은 지옥이니까.
하지만 퇴사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하고 싶은 일'의 여부다. 퇴사여부와 상관없이 요즘 이런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고 재잘대면 "○○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좋겠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루어야 할 목표가 딱히 없으니 회사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이를 핑계로 대는 분들이 더러 있다. "○○씨는 아직 젊으니까." 그 말을 오 년 전에도 들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퇴사하는 사람이 뭔가 굉장한 일을 해낸 사람이고,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퇴사를 하고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처음 쓰던 때 느꼈던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떠오른다. 속시원하게 명함을 다 갈아버리고 나왔으면서도 이러는 게 사람이다. 이 느낌을 나보다 훨씬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조직생활이 맞는 사람, 조직에 속한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는 훨씬 많이 존재한다.
언제 퇴사하면 좋은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회사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최상의 퇴사시점을 계산해본 적이 있는데 그걸 계산하다보면 영원히 퇴사하지 못하는 굴레에 갇혀버린다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댔었다. 과거에 먼저 퇴사한 직원에게 몇 달만 참았다가 퇴사하면 몇 백만원을 더 받고 가는데 안타깝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습게도 나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해 몇 백만원을 손해보고 퇴사했다. 떠올려보면 도망쳤다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회사를 다니는 게 본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다면 그때가 바로 퇴사를 결정해야 할 시기다. 나는 그 시기를 놓쳤다. 삼 년 동안 회사에 삼고초려한 후에야 겨우 퇴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 불안장애의 방치로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 및 혼합형 불안장애'로 돌아왔다. 굳이 이런 결론을 맞이할 때까지 버텨야 할 만큼 가치 있는 회사는 없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플랭클은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학대"라고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는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마음에 차고 넘쳐서 더 이상 지루한 회사생활을 견디기 힘든가? 그렇다면 당신은 퇴사해도 되는 사람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라면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사업이 정말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모의테스트를 거쳐보는 게 좋다.
물론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