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질문은 이랬다. "일하는 거 있어요?" 놀고 있다는 말에 상대는 "괜찮아질 때까지는 쉬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라고 답했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놀고 있어 다행이라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지금쯤이면 당연히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병은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괜찮아진다고 해도 다시 조직에서 일하게 될 지는 모르겠어요."
퇴사일로부터 정확히 일 년하고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복귀 제안을 보기 좋게 차버렸다. 마지막 인사에서 회사를 잊지 말라던 처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구질하게 굴거면 사직서가 아니라 휴직원을 승인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쯤 회사가 원했던 대로 묵묵히 일하고 있었겠지. 사직서가 수리되는 순간, 나는 회사에 기대했던 가느다란 희망의 한 줄기마저 모두 놓아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퇴사도, 복귀 제안 거절도 후회 한 조각 남기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또 호구 잡으러 왔네."라며 실소했고, 다른 가족들도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에서 나를 위해 마련해둔 자리는 일폭탄이 펑펑 터지는 곳이었다. 확실히 우울증으로 퇴사한 직원을 배려한 배치는 아니었다.
아마 회사는 일 년간의 공백 동안 내가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며 회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퇴사한 걸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리석은 양에게 아량을 베푸는 심정으로 복귀제안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다시 굴러들어온 나를 얼마나 더 갈아댈 계획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들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사이동이 진행됐다는 걸 다른 동료를 통해 전해들었다.
"그 회사는 언니가 휴직중인 줄 아나봐?"
퇴사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회사는 나를 찾고 있다. 회사의 미련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나 역시 회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회사 이야기를 이렇게 나불대고 있다. 아직도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으며 회사에서 겪었던 일을 복기하고 분노한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책도 그만 읽을 때가 됐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도 나도 이제는 정말 서로를 놓아줘야 할 때가 됐다. 회사원이었던 나는 과거다. 내가 그리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회사원이 아니다.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좀 무심해질 필요가 있다. 전 남자친구가 결혼하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정도의 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밤중에 "자니?"라는 메시지를 받아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전환한 채 다시 잠들 수 있는 대범함 정도는 갖고 싶다.
안녕, 나의 회사.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