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Nov 11. 2022

인생이 내 앞에 무엇을 가져다 둘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뒤에도 마음은 하루 단위로 오락가락한다. 덕분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그리고 가수면 상태에서도 회사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건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는데. 내 성향에 맞지 않는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타개하기 위해, 다음 사람이 어려움 없이 일을 개선해서 할 수 있도록 마무리해야 할 것들을 머리 속에 정리하고 있다.


  이번 주는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행사 세 건을 이틀 동안 진행했고, 이번 달은 몰아치는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폭풍 같은 시간이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에 그저 기쁠 뿐이다. 이래서 내가 성과지향형 인간인가? 퇴사 시점이 가까워 온다는 점에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은 조금 기쁜 일이다.




  어제는 출근길에 예전에 업무를 자주 했던 타부서 동료를 만났다. 정규직이 됐다고 몇 달 전에 들었는데 오늘이 정규직 최종면접이란다. 그런 말까지 돌 정도면 당연히 되겠지, 라고 응원해줬다. 그래야만 한다. 양심이 있으면 해줘라, 회사야.


  삼 년은 근무하는 거죠? 라고 그가 묻길래 재계약 안 할 거라고 말했고, 실업급여를 한 번도 안 타봐서 실업급여 타며 쉬고 싶다고 말했다. 일 년은 더 일하고 쉬지 그러냐고 그가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 하필이면 이 년도 아니고, 일 년이었던 걸까. 이 년은 무겁고 일 년은 가벼워서? 전 회사에서는 십 년 근무하면 한달 휴가를 줬다. 그걸 목표로 버티려고 했을 때의 암담함이 떠올랐다. 나는 결국 십 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의도치 않게 이번 주는 대부분 칼퇴를 하지 못했고 심지어 야근까지 하고 있다. 주말에는 봉사활동도 매일 네 시간씩 하고 있는데 야근까지 하려니 개인 시간이 잔뜩 오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음 월요일에는 휴가를 내고 전 회사 동료와 부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지난 주에는 반차를 내고 부산에 살고 있는 전전 회사 동료와 차를 마셨다. 나의 인간관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럼 뭐 어때? 안 될 것도 없잖아?


  이틀 동안 있었던 행사에는 타기관 및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타부서 사람들이 동참하거나 함께 하는 사업도 있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타기관, 학생들, 타부서 사람들에게서 기운을 얻고 사무실에서 기운을 잃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일을 도와달라고 팀원을 호출했는데 단번에 그 사람이 폐급인 걸 깨달았다. 그걸 행정직원에게 말했더니 드디어 자기 말고도 아는 사람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팀장님에게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각 사람들의 업무역량,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내가 모르는 팀장님이 겪은 황당한 일들도 있었다. 경력직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이곳 신입들에게는 일어나고 있다. 이곳은 흡사 유치원과 같다. 팀장님은 최고 대우를 해줄 테니 같이 일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부서 분위기 쇄신에 대해 같이 고민하자고 했다. 하지만 모두 바빴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의도치 않게 인사에까지 영향을 줘버린 것 같아서 남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그러나 교수님이 또 내가 한 말을 자기가 한 것으로 자기가 한 말을 내가 한 것으로 우기고, 타부서와 타기관에서 회의 때 교수님이 이야기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걸 달래고,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때문에 절차를 무시하고 사유서를 써야할 상황이 오고,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고, 기타 등등의 사건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이런 걸 감수하면서 있을 필요가 있나. 굳이?


  의무감 때문에 여기 남아 있을 만큼의 무엇을 이곳은 내게 주었던가? 오늘은 재밌다가 내일은 재미가 없는 그런 하루들이 오가고 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정말 일이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는 게 맞나보다. 재밌는 일이 세상에 어딨겠냐만은, 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분명 재밌는 일이 있겠지. 팀장님에게는 기존 팀원들을 잘 다독여서 잘 이끄시라고 말할 셈이다.


  오늘은 칼퇴해야지. 회사 일 말고도 내게는 해야 할일이 많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꼰대라는 공통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