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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Dec 15. 2022

어쩌면 인생은 플랜B

  도서관 면접에 최종합격했다. 경력 하나 없는 내가 감히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작은 스노우볼의 시작이었다. 센터 실적을 위해 도서관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우연찮게 그곳에서 높은(?) 분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 하루의 만남이었는데 그분은 한 주만에 나에게 일 잘하는 봉사자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봉사활동 선생님!"


  원서를 내러 갔을 때 그분은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아는 체를 했다. 면접은 화기애애했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와서 배우면 된다'로 포장되었다. 주 2회 근무하는 자리도 얻기 힘들었던 내가 어쨌든 도서관에서 풀타임 잡을 얻은 건 정말 우연한 스노우볼의 영향이었다.




  "불참하고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합격 발표 다음 날은 회사 워크숍이었고, 불참 의사는 거절되었다. 한달간 공석이 될 거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팀장님이 순간 내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물귀신처럼 보였다. 나는 달아나지 못할까봐 겁이 났다.


  "오후 1시 출근이니까 필요하면 당분간 오전에 출근하겠습니다.(유료 서비스)"


  그렇게 협상은 타결되었다. 팀장님은 2개월의 공백을 채울 사람을 급히 채용하기 위해 절차를 서둘렀다. 덕분에 나의 퇴사 절차도 덩달아 빨라졌다. 공백이 없다면 앞서의 유료 서비스는 필요없겠다 싶었는데, 팀장님은 가능한 일인지 연구재단에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연초에 돈 좀 만지겠네, 어이구.




  어쩌면 인생은 플랜B로 만들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었지만 플랜B로 대학에 재취업했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퇴사하고 싶었지만 플랜B로 도서관 야간연장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깔끔하게 퇴사하고 싶었지만 플랜B로 오전근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안 하면 좋겠지만.


  2023년에는 플랜B를 잘 짜봐야겠다. 인생은 플랜B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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