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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중독자 May 27. 2021

오래된 집

명왕성 - 그 가족력의 무게


엄마는 그곳에서 이사 온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지금 사는 경기도 한적한 이 곳에 정을 못 붙이고 서울 변두리에 살던 과거의 그 동네를 그리워하신다. 그 동네는 지금은 마흔 넘은 두 동생이 태어났던 곳이고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의 학업을 치른 곳이며 직장을 다니다 인도로 떠났던 때에도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결혼을 했을 때에도 살던 동네다. 그 동네에는 지금은 번듯한 사층 건물로 탈바꿈해서 서울이라는 아성에 걸맞게 수억 대의 집값을 호가하는 시세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에는 무덤과도 같은 작고 초라한 집이었다. 난 그 집에서 30년을 넘게 살며 자라났고 그 집구석 구석에는 우리 사 남매의 남은 생을 좌지우지할 초기 교육과 인생의 틀, 삶을 살아갈 과업과 자존감 따위가 생성된 곳이며 이곳은 나의 엄마 아버지의 실질 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현장이자 희로애락의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살던 시간이 환희와도 같던 시간이 정녕 아닐 텐데, 어쩌면 한편으론 지긋지긋할 법도 한 그곳을 엄마는 왜 그리워하는지? 당신들 손으로 한빰한빰 일구고 만들어낸 삶의 터전이어서 일까? 그곳에서 식솔을 이루고 먹이고 입히며 온갖 생사고락의 파고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낸 일종의 애증이라도 서려있는 걸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을 지켰다. 집착처럼 붙들고 있던 그 집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빈방을 정리할 때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만 한 톤 트럭 이상의 분량으로 나온듯하다. 그 좁은 방에 둘 때가 어디 있다고 그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놨는지, 아버지의 살 같고 표피 같은 물건들을 우리들은 미련 없이 버렸다. 아버지를 버리듯, 하지만  버리고 돌아서도 홀가분하지 않았다. 도망치듯 서울 집을 집을 팔고 경기도로 이사 온 날  아버지는 새로 이사 온 집에도 함께 오시고 새 집에도 존재하시는 듯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에 대한 집착이 불러운 혼과도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친청을 옆 동에 끼고 매일 들여다봤다. 여동생은 새 집으로 이사를 오더니 천식을 앓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동생을 괴롭히던 병은 그녀의 청춘을 빼앗아갔다. 이사 온 지 얼마 안돼 발병한 병은 근 5~6년 을 괴롭히더니 이제야 잠잠해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 에는 모노노케의 상징들이 등장한다. 일본 말인 모노노케가 가진 의미는 물건이나 사물에 깃든 영이며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한  버려진 혼령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선한 사람이라 돌아가신 후 천국 어디쯤으로 가볍게 훨훨 가셨다고 믿는다. 다만 내가 이 글에 모노노케를 등장시킨 이유는 아버지가 남긴 집착과도 같은 감정의 끈끈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주체인 자아 혹은 본질이 없어져도 사물에 남아 주인행세를 한다. 망자가 남기고 간 삶의 흔적 안에서 망자가 살아생전 곱씹었을 무수한 집착과 습이라는 감정의 찌꺼기들 속에 머물다가는 간혹 약하고 여린 이들을 실질적으로 힘들게 하거나 괴롭힐 수 있다.

집착과 관련해서 점성학적 관점에서 연관 지어 본다면 여러 행성 중 명왕성을 떠올릴 수 있다. 명왕성은 물을 관할하는 원소다. 점성학이 말하는 4 원소 중 물은 감정이 영역이라 감성적일 것 같지만 명왕성의 물은 깊고 좁은 우물과도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명왕성이 강하게 타고난 사람들은 집착이나 집념이 강하고 감정적 상처의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한다. 명왕성의 사인인 전갈자리 사람들이 집요하고 만만하지 않은 이유다. 그들은 자신을 넘어 타인마저 정신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며 지배할 수 있는 충분한 정신력과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의 차트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명왕성의 영향을 받는 분이셨다. 나의 가족력에 분명히 들어있는 명왕성, 그것이 주는 무게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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