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멤버 생일카페 방문기
"네 뒤를 좀 밟아도 될까? 너랑 친구 아는 척 안 할게. 정말 궁금해서 그래."
아이가 투바투(아이돌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줄임말) 멤버의 생일카페에 간다고 했다.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인 수빈이 생일은 아니고, "덕친"(덕질을 같이하는 친구)이 좋아하는 '연준'이라는 멤버의 생일이라고 했다. 친구의 동행 요청에, 덕질이 처음인 아이는 일단 뭐든 경험해 보자며 수락했다. 덕질이 능숙한 친구의 인도에 아이는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연준이라는 멤버가 생일카페에 오는 거야?"
"그럴 리가요."
"그럼 뭘 보러 가는 건데?"
아이돌 멤버의 생일이 다가오면 팬들이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많이 한다. 지하철역 같은 유동인구 많은 곳에 축하 광고를 건다. 생일 카페도 있다. 카페 같은 곳을 빌려 내부를 멤버의 사진으로 장식하고, 음료컵에도 멤버의 사진을 넣고, 음료를 사면 사진 같은 비공식 굿즈를 끼워주기도 한다. 모든 아이돌 그룹의 멤버 생일엔 으레 있는 행사인 듯, 인기에 따라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최근 BTS 멤버 지민의 생일엔 반포 한강공원의 세빛섬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멤버의 사진을 쓰는 건데 기획사의 허락은 받은 거야?"
"그럴 리가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팬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행사이기에 초상권 침해 정도는 묵과하는 것 같았다. 알아서 팬들끼리 모여서 아이돌 멤버에 대한 마음을 나누겠다는데 금지해 봤자 반발이 크겠다는 계산일까. 아이돌가수 산업은 팬들이 핵심이기 때문이겠지.
아이가 갈 카페는 투바투의 기획사인 용산 하이브 사옥 바로 뒤편에 있었다. 약속대로 아이와 친구가 탄 버스를 뒤 따라 탔다. 미행한다는 의심을 (혹시라도) 차단하기 위해 정류장에서 먼저 내렸다. 아이와 친구는 정류장을 착각해 못 내렸다. 미행인의 자세를 망각한 걸 잠시 반성했다.
하이브 사옥 뒷길에는 이층짜리 건물 네다섯 개가 나란히 위치했고, 1층은 전부 카페였다. 모두 생일카페로 변신해 있었다. 2층을 다 덮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시간대가 애매해서 그런지 카페 앞은 한산했다. 하이브 사옥 앞에선 히잡을 쓴 외국인 여럿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는 BTS 교통카드와 우산을 팔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서 등긁개와 등산스틱을 파는 것과 흡사했다.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자니 무료했다.
"우리도 한번 들어가 볼까? 애들 계속 기다리기도 심심하고."
"절대 싫어요!"
아이돌을 안 좋아하는 미행 메이트인 아이의 동생이 저항했다. 미행에 동참시키기 위해 '흔한 남매 10권'을 사주겠다고 꼬드겼었다. 10여분 후에 아이와 친구가 왔다. 길 건너에서 멀찍이 지켜봤다. 첫 번째 카페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들어가는 사람들은 10-20대의 여성들이었다.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볼 것도 없었기에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는 이렇게 많이 안 가도 될 거 같아요."
아이는 총 세 개의 카페를 갔다고 했다. 음료 한잔에 7천 원이었다. 폭리를 취할 요량으로 음료가격을 책정하지는 않았을 거다. 단기 대여니 렌트비 등 고정비 비중이 컸으리라. 음료는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었다. 멤버의 얼굴이 인쇄된 종이컵이 하나, 그 외 잡다한 엽서와 사진, 스티커 등등을 끼워줬다.
"연준이가 최애도 아니면서 사진은 뭣하러 받아왔어?"
"수빈이 사진이랑 교환할 때 필요해요."
다른 멤버의 사진은 교환가치를 지닌다. (나중에 투바투의 앨범을 사면서 자세히 알게 된다.)
회사일로 해봐서, 행사 진행의 어려움은 아는 편이다. 장소 선정부터 해서 음료 주문, 인원 동원, 홍보 등 수많은 아이템에 대해 의사결정하고 딱 그 수만큼의 상대방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잘 되면 본전이고 문제 있으면 표 난다. 그리고 항상 문제는 생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기에 그 수만큼 불만이 있다. 월급 받는 것도 아니고, 사서 돈 들여하는 고생 체험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아이돌 멤버의 생일에 자발적으로, 때로는 사비까지 들여가며 생일카페를 열고 이벤트를 하는 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생일카페를 방문하는 팬들 역시 시간과 돈을 들여 사랑을 표현하는 거다. 내가 그날 아이의 뒤를 밟아 결국 확인했던 건, 자본주의의 정점인 아이돌산업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이 표현되는 방식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