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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Feb 04. 2024

그는 나에게로 와서 굿즈가 되었다

앨범 사고 남은 기둥뿌리 뽑는 아이돌 굿즈의 세계

"요번에 기말고사 잘 보면 투바투(아이돌 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응원봉 사주세요."

"콘서트도 못 가면서 응원봉이 왜 필요한데?"

"진정한 팬이면 응원봉이 있어야죠!"


투바투의 응원 덕분인지 아이는 지난번 보다 시험 성적이 올랐다. 할 수 없이 투바투 응원봉인 '모아봉' 구입을 위해 위버스샵에 접속했다. 지난번에 앨범 주문하고 다시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참, 모아봉 1 말고 모아봉 2로 주문해 주세요. 새로운 기능이 있대요."

"그냥 모아봉 1을 주문하면 안 돼? 가격 차이가 만원인데?"

"안 돼요!"


응원봉도 일단은 전자제품이니 신제품이 나오나 보다. 애플에서 아이폰 신제품이 나오는 거랑 비슷한 건가. 응원봉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지만. 새로운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회사의 음모가 아닐까.


응원봉은 휴대용 선풍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대략 25센티미터 길이의 손잡이 역할을 하는 막대기 위에 LED 전구가 얹혀있다. 콘서트나 공개방송 등 가수의 공연에 으레 지참한다. 투바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아이돌이 고유한 형태 및 이름의 응원봉이 있다. 소싯적엔 각색의 풍선 개수로 아이돌 그룹의 세를 과시했는데, 이젠 응원봉으로 진화했다. 자본과 IT의 혼종이다.


모아봉 1과 모아봉 2는 무엇이 다른가. 핵심은 중앙제어기능이다. 일정 시점부터 구 버전은 이 기능이 적용이 안 된다고 한다. 콘서트에 갔는데 내 응원봉만 모양도 다르고 다른 색의 불이 들어온다면? 모아봉 1이 있어도 모아봉 2를 구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모아봉 1]


[모아봉 2]


아이돌 '산업'의 수익원은 음반 판매,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소비자=팬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 응원봉을 위시해서 각양각색의 아이돌 관련 상품이 판매된다. 머천다이즈, 머치, MD, 굿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카테고리도 매출에 상당히 공헌한다.


투바투의 기획사인 하이브의 가장 최근 '23년 3분기 실적을 보자. 총매출은 5379억 원이다. 이 중에서 앨범 매출은 49%인 2641억 원, 공연 매출은 16%인 869억 원이다. 여기에 광고 출연 등을 포함해 직접 참여형 매출은 총 3824억 원이다.


한편 MD 및 라이선싱, 콘텐츠, 팬클럽 등 간접 참여형 매출은 29%인 1554억 원으로 무시 못할 비중이다. 콘서트 중인 세븐틴, 엔하이픈의 응원봉 등 공연 굿즈 매출, BTS의 데뷔 10주년 기념 오피셜북 매출 등이 기여했다. 아이가 산 앨범 네 장도 매출에 포함되어 있겠다. 다음 매출엔 아이가 산 굿즈가 포함될 예정이다.




곧 아이의 생일이었다. 선물로 뭘 할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투바투인가. 앨범은 아이가 용돈으로 스스로 사니 서프라이즈가 필요했다. 다시 한번 위버스샵을 탐색했다. 굿즈 카테고리를 보니 열쇠고리, 티셔츠 등 의류, 가방, 스마트폰 케이스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가 있었다. 그나마 달력은 하나 있어도 될 것 같아 '시즌그리팅'을 선택했다. 연말에 달력과 다이어리 등등을 묶어서 파는 세트이다. 가격은 4만 5천 원.


학원 수업에 지쳐 돌아온 아이는 선물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폈다.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사주기 잘했네.


구성품은 다음과 같다.  

- 탁상달력

- 다이어리

- 포토북 (88페이지)

- 동영상(60분)을 재생할 수 있는 디지털코드

- 사진엽서 5장

- 포토카드 10장 (왜 없나 했다)

- 스티커 세트

- 메모장

- 종이폴더



모든 구성품의 재질은 종이였다. 어쩐지 박스가 한없이 가볍더라. 그대로 재활용함에 넣어도 될 정도네? 앨범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씨디라도 있었지. 응원봉은 전자제품이기라도 하지.


포토카드는 멤버별로 두장씩 총 열 장이 들어있다. 너그럽기도 하지. 음반과 달리 시즌그리팅은 여러 개 사기 무리라는 판단일까. 별안간 포토카드 부자가 된 아이의 얼굴이 상기됐다.


"달력에 수빈이가 메시지를 썼어요!"


달력은 배경사진도 멤버가 모델이었지만, 몇몇 날짜에 멤버들이 메시지를 써 놓았다. 종이가 굿즈가 되는 비법이 거기에 있었다.


투바투가 메시지를 쓰기 전에는

그 종이는 다만

평범한 달력에 지나지 않았다.


투바투가 메시지를 써주었을 때

그 종이는 나에게로 와서

굿즈가 되었다.


김춘수 시인은 부가가치의 마법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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