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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Dec 18. 2023

세상의 모든 생일파티

홍콩 국제학교에서는 생일파티를 어떻게 하나

파티엔 낯을 가리는 편이다. 내향적 성격 탓일 수도, 파티가 드문 모국의 문화 때문일 수도 있다. 생일 파티 말고 별로 열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었지만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수많은 파티를 경험했다.


국제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뒤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생일이었다. 학교에서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케이크만 준비해 주면 된다고 했다.


"참, 집에서 직접 만든 케이크는 안됩니다."


만들 생각도 없었지만, 왜? 국제학교에는 서양 학생들이 많고, 그들은 갖가지 알레르기에 시달린다. 견과류, 유제품, 갑각류, 밀가루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 서양에서 판매하는 식품에는 성분을 세세히 표시한다. 홈메이드 케이크는 성분을 몰라 위험한 거다. 나약한 인종 같으니...


같은 반 한국 엄마가 '맥심'에서 케이크를 주문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커피가 아니다. 홍콩의 파리바게뜨 같은 제과점이다. 각자 먹기 좋게 컵케이크 삼십 개를 주문했다. 아이는 생일선물로 교통카드가 내장된 손목시계를 원했다. 반에서 유행이라 했다. 지하철 역 몇 군데를 돌아다녀 겨우 구했다.


다음 해 생일파티는 제대로 했다. 서양인 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도우미가 케이크와 음식을 준비해 줬다. 여러 색의 풍선을 불어 거실 벽에 붙였다. 답례품인 구디백을 준비하는 게 예의라고 들어, 소소한 완구와 문구류 몇 개씩 넣고 꾸러미를 준비했다. 아이의 생일 파티에 와줄 만큼 친구들을 사귀었구나. 준비는 고단했지만 뿌듯함이 덮고도 남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나처럼 거실에서 생일파티를 여는 경우는 드물었다. 홍콩의 집들이 다 좁기 때문이리라. 내가 가본 유일한 자택 생일파티는 외곽인 사이쿵 지역 단독주택에서였다. 멀찍이 해안선이 보이고 마당에 수영장이 있었다. 답례품은 물놀이 튜브였다. 초대받은 아이들의 이름을 매직으로 하나하나 써 놓았다. 수영장에서 가지고 놀다가 그대로 가져가게 했다.


집에서 생일파티를 할 경우 아파트 단지의 파티룸을 이용한다. 한 번은 고급 아파트의 수영장 딸린 파티룸에 초대받았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제공됐다. 부모들도 같이 와서, 자기들끼리 샴페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아이들은 따로 안쪽 룸에서 피에로 분장을 한 마술사의 묘기를 구경했다. 거나하게 취한 어른 중 하나가 수영장에 빠질 무렵 파티가 마무리됐다. 아이들은 한 손엔 구디백을, 다른 손엔 마술사가 만들어준 풍선 강아지를 들고 돌아왔다.


또 다른 파티는 뷰티 살롱 콘셉트였다. 작은 사이즈의 1인용 소파 위 각자 갈아입을 가운이 놓여있어, 제법 미용실 분위기가 났다. 아이는 메이크업과 네일아트 체험을 했다. 파티 주인공보다는 엄마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았다.


시내의 파티룸을 대여하는 선택지도 있다. 초대장의 주소로 찾아가니, 서울로 치면 홍대쯤 되는 란콰이퐁의 뒷골목 작은 건물의 꼭대기층이었다. 야광 조명 아래서 보이는 둥 마는 둥 그림을 그리고 다트를 던졌다.


슈퍼팩, 라이즈 등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에서는 생일파티 패키지가 있다. 실내에서 두 시간 정도 놀고 이후 파티룸으로 옮겨 케이크를 나눠먹고 선물을 풀어본다. 입장권은 초대한 측에서 제공하며 파티룸 이용료도 부담한다. 나중에는 여기에서 애들 생일파티를 해줬다. 입장권만 해도 5만 원이 넘으니 지출이 상당했다. 남들처럼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다른 파티에 가보니, 집에서 하려면 마술사 정도는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타코벨이나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도 생일파티 프로그램이 있다. 타코벨 생일파티에서는 아이들이 멕시코 모자를 쓰고 브리또를 만드는 체험을 했다. 맥도널드는 생일 배너와 장식 정도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파티에 갈 때마다 흥분했고 집에 와서도 여운에 빠져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가끔 부모가 같이 가는 파티가 있어 동행해야 했는데 고역이었다. 성격상 맞지 않는 건 둘째치고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빠르게 구어체로 대화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영어를 나름 오래 공부했지만 어렸을 때 원어민으로 배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됐다. "오 리얼리? 아하~ 으음~"등 다양한 리액션만 늘었다. 고육책으로 파티에 도착하자마자 와인부터 원샷했다. 그나마 술의 기운을 빌어야 긴장이 풀렸다. 아이들은 이런 곤란함은 겪지 않겠지. 안도하는 게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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