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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Dec 15. 2023

거대한 영어유치원 같은 국제학교

홍콩의 인터내셔널스쿨에서는 무엇을 배웠나

둘째 아이는 반에서 '누님'이라고 불린다. 남들보다 2년 앞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홍콩에서 다녔던 영국계 국제학교는 만 5세에 시작한다. 초등, 중, 고등학교를 합쳐 11학년까지 이어진다. 이 중 1~6학년은 초등과정으로 프라이머리(primary) 스쿨,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7~11학년은 세컨더리(secondary) 스쿨로 나뉜다.


학년만 이어질 뿐이지 한국의 학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라이머리와 세컨더리는 일단 교복부터 다르다. 전자는 폴로티에 고무줄바지이고 후자는 셔츠와 스커트, 바지로 한국의 교복과 비슷하다. 세컨더리에 가면 스쿨버스를 타지 않고 혼자 하교할 수 있다. 홍콩의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등교 시간은 이르다. 아이들은 7시 남짓 스쿨버스에 올랐고, 8시면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은 어셈블리(assembly)라고 불리는 아침 조회로 시작한다.


영국계 학교이기 때문에 학과 과정은 영국의 국가 교육과정(English National Curriculum)을 따른다. 프라이머리에 다녔던 내 아이들은 영어, 수학, 과학, 미술, 음악, 체육, 중국어, 드라마 등의 과목을 배웠다. 세컨더리에 가면 역사, 지리 등이 추가된다. 쓰기 수업이 매일 빠짐없이 있었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독서록도 매일 작성해야 했다.


더해서 학기마다 테마 수업이라는 게 있었다.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고대 이집트, 바이킹 등 주로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배웠다. 해리포터가 테마인 적도 있었다. 이미 고전에 반열에 올랐나 보다.


학교는 거대한 영어유치원 같았다. 파스텔톤의 인테리어에 사진과 시각적 교재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영국 출신의 원어민 선생님과, 홍콩인 보조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분위기는 느슨했다. 코스튬 데이 등 이런저런 이벤트도 많았다. 수행평가 같은 테스트는 없었고 대신 매 수업마다 자기 주도로 채점을 하고 선생님이 재확인을 했다.


영국의 지명을 따서 학생 전체를 네 개의 하우스로 나눴다. 같은 반에서도 모든 하우스 소속이 있었다. 체육대회 때 하우스 기준으로 편을 갈라 경기와 응원을 했다. 과제 등을 우수하게 수행하면 하우스 색의 플라스틱 코인을 한 개씩 줬다. 학교 중앙계단에 하우스별로 코인을 모으는 투명한 박스가 네 개 있었다. 학기가 끝나면 등수를 호명했다. 호그와트 학교처럼 퀴디치 경기 중 골든 스니치를 잡아 대 역전하는 상황은 없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배웠기 때문에 영어 실력은 마른논이 물을 빨아들이듯 쑥쑥 늘었다. 정작 고전한 건 귀국 후였다. 수업 용어를 전부 영어로 배워서 한국 수업을 못 따라갔다. 이를테면 verb, noun는 알지만 동사, 명사라는 명칭은 생소했다. 과학 시간엔 mercury로 배워서 수성을 몰랐다. 다른 아이들과 정서가 달라 어울리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반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을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국제학교를 다니는 건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차원을 넘어선다. 3년만 다닌다고 해도 아이들에겐 인생의 1/3~1/4 정도의 중량감이고 정체성이 결정되는 시기다. 해외에 나가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건 다들 이해한다. 반면 원래 한국사람이니 귀국하면 얼른 적응하겠지 하고 기대한다. 성인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은 밀도가 다르다. 돌아와서 한국어 수업을 쉬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가치관의 충돌로 다시 해외로 아이를 기숙학교 등으로 보내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왕왕 봤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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