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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Dec 09. 2023

홍콩 에그와플의 추억

"엄마,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요."

"음... 그럼 학원을 알아볼게."


홍콩에 와서 전자피아노 한대를 구입했다. 혼자서 부모 역할을 하니까 퇴근하고 바로 집에 오기로 결심했다. 대신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레슨도 없는 자발적인 취미는 얼마 가지 못했다. 아이는 방치된 피아노를 눈여겨보고 있었나 보다.


집으로 레슨 하러 오는 한국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시간당 7만 원이었다. 시세에 놀라 대신 로컬 학원을 알아보았다. 전단지를 보니 30분 수업에 2만 원 정도였다. 이왕이면 로컬 학원 다녀보는 것도 경험이지, 하고 합리화했다.


한국의 학원은 한 시간 수업이면 레슨 10분, 연습 50분이다. 홍콩의 30분 수업은 온전히 레슨이었다. 실력별로 급수라는 게 있었고, 그에 따라 레슨비는 차등이었다. 요구되는 급수만 따면 음대 출신이 아니어도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영어 수업이 가능한 시간대는 몇 개 안 됐다. 수요일 세 시와 금요일 여덟 시 중 고르라고 했다.


세 시면 도우미가 데려가야 했다. 아이는 가만히 듣더니 엄마가 데려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원은 사는 집의 길 건너 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했다. 우리가 살았던 홍콩섬 북동쪽 타이쿠싱은 1980년대에 해안가를 간척해 대규모 주거단지로 개발되었다. 단지 정중앙에 시티플라자라는 쇼핑몰을 두고, 정방형으로 총 40개 동의 아파트 단지가 둘러싼 모양새였다.


쇼핑몰과 인접한 아파트 동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었다. 덕분에 우산이 없어도 비를 맞지 않고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홍콩은 소나기가 자주 와서인지 건물 사이가 구름다리로 많이 연결돼 있었다. 홍콩섬에서 구룡, 신계를 지나 국경을 넘어 중국의 선전까지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젖지 않고 갔다는 영웅담도 돌았다.


매주 금요일이면 저녁밥을 서둘러 먹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바로 집에 돌아왔다. 어디 가 있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20분 남짓 스마트폰을 보다가 금세 집을 나섰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는 집에 바로 가려하지 않았다. 엄마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원 앞 놀이터에서 철봉에 매달리거나 그네를 탔다. 철봉에 손이 닿지 않아 나에게 항상 들어달라고 했다. 길만 건너면 집인데 구름다리를 건너 쇼핑몰로 갔다. 그리고는 항상 홍콩 와플가게에 들렀다.


반으로 접어 생크림과 사과잼을 발라주는 길거리의 동그란 와플과도, 슈거파우더를 뿌려 접시에 고급스럽게 담아주는 카페의 네모난 와플과도 달랐다. 지름 2센티미터 정도의 구슬 모양이 사방좌우로 붙어 손바닥 두 개를 붙인 정도의 육각형을 이뤘다. 구슬의 안은 비었다. 정식 명칭은 '까이딴자이'였지만 아이는 계란빵이라고 불렀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받았다. 생크림이라던가 초코시럽 같은 걸 얹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항상 토핑 없는 기본을 골랐다. 종업원은 주문을 확인하곤 플라스틱 주전자에 담긴 반죽을 와플팬에 부었다. 반죽은 다소 묽었다. 와플팬은 한쌍으로 되어있었다. 반죽을 붓고 팬을 서로 맞물리게 닫아 잠금장치를 고정했다. 팬을 몇 번 뒤집어서 반죽이 양쪽에 고루 묻도록 했다.


종업원은 타이머를 일분 삼십 초로 맞추곤 자리를 떴다. 나와 아이는 가만히 서서 와플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타이머가 울리면 가느다란 주걱을 이용해 팬에서 와플을 분리했다. 둥그렇게 말아서 미니선풍기 앞에 두고 1분간 식혔다. 호출받아 교환권을 보여주면 와플을 종이봉투에 담아 건넸다.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봉투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쌌다. "엄마 좀 줘." 하면, 잠시 주저하다가 구슬 두 개쯤 떼어 건넸다. 껍질이 얇아서 바삭했다. 갓 만든 음식 특유의 온기와 향기가 돌았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반복되어 온 의식과도 같았다.


귀국하고서도 아이는 가끔 계란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홍콩이 그립단 말의 동의어였다. 회사 근처에 홍콩 에그와플 파는 체인점이 있어, 퇴근길에 사서 아이에게 줬다.


내가 비빔면을 먹을 때마다 어린 날이 떠오르듯이, 아이에겐 에그와플이 그런 존재일 거다. 홍콩의 피아노 학원과, 손이 닿지 않던 놀이터 철봉과,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에그와플팬을 가만히 기다리던 순간. 백 번 넘게 반복되어 추억으로 단단히 각인된 그 기억.


나와 아이는 반복된 일상을 여태껏 함께 해왔고 공유하는 추억이 있다. 그런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른다.






(photo: Amaz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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