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워킹맘의 문화체험
말할 것도 없이 홍콩은 중화문화권이다. 당연히 음력설을 쇤다. 큰 줄기론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우리도 이거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안 하는데?"의 연속이다. 나는 일종의 계약직 외국인 노동자이므로 당장은 신기하다. 우선, 세뱃돈을 주는데 빨간 봉투에 담아줘야 한다. 홍빠오(紅包)라고 하는데, 역시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답다.
봉투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 설이 가까워오면 슈퍼, 문구점 등에서 여러 가지 디자인의 빨간 봉투를 판매한다. 어떤 매장에서는 구매고객에게 사은품으로 몇 장 주기도 하고, 거래은행에서도 보내준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달력을 보내주는 정도의 느낌으로. 마지막으로, 회사 총무가 "너 홍빠오 몇 장 필요하니"하고 물어본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을 별로 아끼지 않으므로, 이건 홍콩의 관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사실 봉투가 그렇게 비쌀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회사도 일단은 비용이 별로 안 드니까 생색낼 겸 사주나 보다.
봉투를 구했으니 안에 돈을 넣어본다. 외노자라는 건 이럴 때 편하다. "얼마씩 주면 돼?"라고 당당히 물어볼 수 있다. 봉투당 20홍딸(홍콩달러를 줄여 이렇게 부른다) 이면 된다고 한다. 한국돈으로 삼천 원도 안된다. 어떤 드라마에서. "누구든 가슴에 삼천 원쯤은 있는 거예요"라더니 홍콩 세뱃돈 이야기였구먼. 홍콩 물가가 결코 싸지 않은데 세뱃돈은 의외다. 소싯적 두당 만원 하는 세뱃돈 모아서 영플레이모빌 산건 88 올림픽 때 물가이고, 요샌 5만 원 정도 주는 듯?
제일 중요한 것. 홍빠오는 혈연에게만 주는 게 아니다. 비단장사 왕서방의 나라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돈에 솔직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솔직한 욕망이고, 돈을 많이 뿌리면 자기에게 되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아예 남에게 주는 건 아니고, 가족의 손아랫사람은 물론이고, 좀 알고 지내는 경비나 웨이터에게도 줄 수 있다. 물론 더 큰돈을 넣어도 되고, 봉투를 여러 개 줘도 된다고 한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 홍빠오에 초콜릿 같은 걸 담아 주기도 한다. 나는 아파트 경비들에게 주기로 했다. 아까 그 총무가 신권 수요도 물어봤다. 일반적인 홍콩 사람들이 몇십 장(몇백 장?)의 홍빠오를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콩줄기 몇 가닥 정도의 인간관계밖에 없는 나로서는 호기롭게 20달러짜리 50장을 불러본다.
아까 얻은 홍빠오 50장에 아동노동을 착취해서 20달러 한 장씩 넣게 했다. 물론, 그 아동(둘째 딸)은 신나서 봉투를 제조했다. "나도 어른이 하는 일을 한다고~"라는 자부심인 듯. 그러고 보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과 비슷하다. 겨우내 양식을 마련한 개미의 심정으로 두둑한 봉투를 품 안에 넣고, 엘리베이터홀에 숨어서 목표물인 경비를 몰래 훔쳐봤다. 처음으로 홍빠오를 주는 거라 긴장되었다. 자연스러워야 할 텐데. 나는 현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외노자이기 때문이다. 몇 명이 로비를 드나들었지만, 아무도 봉투를 안 줬다. 전부 외국인인가 보다. 이대로 뜸 들이다간 회사에 지각하겠다 싶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경비를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길로 봉투를 내밀었다. 참새를 사냥하는 독수리처럼 그가 봉투를 낚아챘다. 한두 번 받아본 솜씨가 아니었다. 항상 포커페이스이던 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이제 퇴근길이다. 한 사람에게 두 번 주면 안 되므로(왜?) 아침 경비 얼굴을 복기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동은 네 명의 경비가 반나절에 한 번씩 교대한다. 그런데 이번엔 못 보던 얼굴이다. 일단 봉투를 줬다. 또 미소가 번졌다. 밤에 잠깐 나올 일이 있었는데, 또 뉴 페이스였다. 봉투과 미소의 인과관계가 또 발생했다. 며칠간 관찰한 결과, 설 연휴 동안 교대인원은 열두 명쯤으로, 교대간격은 두세 시간으로 바뀌었다. 다른 동에서 원정을 왔나 보다. 우리 경비도 다른 동에 갔겠지. 홍빠오 품앗이라고 불러야겠다. 가욋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테니까. 덕분에 7장(딸 둘+도우미 한 명+경비 네 명)에서 끝날 내 홍빠오가 스무 장 가까이 소진되었다. 남은 삼십 장의 홍빠오를 해체하자, 공돈 6백 홍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