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귀국 준비하기
'마션'으로 유명한 작가 앤디 위어가 신작 소설을 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미션을 떠나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가만 보면 내 처지와 비슷하다. 기한을 정해 멀고 낯선 곳으로 떠난다. 세상을 구할 정도로 거창하진 않아도 유일한 보호자로서 아이들과 무사히 해외생활을 보내야 하는 임무도 있다.
이제 임무를 완수할 순간이다. 귀국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잘 버텼다. 3년 전 처음 홍콩에 왔던 때를 생각하면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하다.
타국에서 몇 년쯤 산다는 건 상당히 어중간한 경험이다. 완전히 정착해야 하는 이민자도 아니고, 철저히 타인으로 다닐 수 있는 여행자도 아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할 정도의 탐색과 사귐과 마음가짐은 필요하지만 기한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정도에서 그치게 된다.
우주인이 금성에 가서 3년 동안 탐사활동을 한다고 치자. 우주선은 지표면에 정박한다. 3년 동안 숙식을 해결할 집이다. 매일 정찰 활동을 하면서 자기만의 루틴이 생긴다. 금성인(?)을 만나 친교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하면 돌아가야 한다는 건 잊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 침잠하다 보면 가끔 금성에 영원히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귀국이 한두 달 남은 시점에는 그간 펼쳤던 일상의 꾸러미를 하나하나 주워 담는 과정을 거친다. 초반에 정착을 위해 했던 일을 반대방향으로 반복하는 거다.
제일 큰 덩어리는 학교와 집이다.
홍콩에 올 때와는 달리 귀국하면 주소지에 해당하는 학교에 배정되기 때문에 별도로 선택할 수고는 덜었다. 온 가족이 나왔다면 이사부터 고민했겠지만, 내 경우는 남편이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귀국해서 정착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온 가족이 다 같이 파견을 나온 경우는 한국에서 집 구하고 전셋집을 구하거나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이삿짐 받는 것도 큰 일이다.
국제학교는 전학 가기 몇 달 전까지는 통보해야 하는 기한이 있다. 한국의 학교에도 미리 연락해서 전학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이 중에는 국제학교에서 받아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꼼꼼히 챙겨야 한다.
"엄마, 우리 계속 홍콩에 남아있으면 안 돼?"
"아빠도 한국에 있는데 돌아가야지."
아이들은 귀국에 저항한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인생의 1/3 이상을 산 곳을 떠나는 셈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홍콩에서 들였던 노력만큼 적응에 힘써야 하는 걸 안다. 귀국해서 적응하지 못해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를 꽤 봤다.
출국 직전 한 달은 살던 집을 먼저 비우고 호텔에서 머무른다. 이삿짐이 한국에 가는데 몇 주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귀국을 도와주러 오셨다. 도우미는 짐을 빼기 전날에 떠나보냈다. 집 구하기 전에 머물렀던 레지던트로 한 달간 다시 들어갔다. 수미쌍관의 의식과도 같았다.
큰 덩어리가 해결되면 기념품 등 소소한 쇼핑을 한다. 지인들과 환송 만남을 가진다. 아이들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슬립오버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그동안 꾹꾹 눌러둔 안도감이 온몸에 퍼졌다. 큰 탈은 없어도 소소한 사건들은 많았다. 학교에서 수학여행 가서 식중독에 걸린 아이를 밤늦게 배 타고 섬에 가서 데리고 왔던 일, 크리스마스 때 트리 구경을 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아이를 삼십 분간 잃어버렸던 일.
끝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감상적이 된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공평하게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인생의 시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코로나가 한창인 와중에 귀국해서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으로만 수업을 들었다. 꽤 오랫동안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외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영어실력이 비교할 수 없이 늘었다. 인터내셔널 한 환경을 접한 것도 도움이 될 거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자산을 줬다고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은 있다.
"엄마, 방금 말한 영어단어 발음 이상해."
"뭐가 이상해?"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냥 이상해."
나처럼 영어와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만 해도 감사하다.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솔직히 버텼다고 할 만큼 힘들었다. 남편 등 주위 사람 도움 없이 타국에서 회사일과 육아를 혼자 해내는 건 버겁다. 이보다 힘든 경험이 올까.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견딜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남았다.
지금 워킹맘으로 해외에 계신 분들 힘내시길. 기한이 있는 고통은 참아지기 마련이다. 나도 나중에 한번 해볼까 하는 분들도,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 내가 했으니 모두 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