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워킹맘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나
느지막이 눈을 뜨자 가사도우미 M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일요일이었다. M은 휴일을 맞아 일찌감치 맥도널드 센트럴 지점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필리핀 도우미들의 아지트라고 했다. 남겨진 건 온전한 하루와, 건사하고 즐겁게 해줘야 할 아이 둘과, 나였다.
서울이라면 자동차를 타고 교외에 갔을 테지. 홍콩 사람들은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가나? 우리가 생각하는 홍콩인 구룡반도 남쪽과 홍콩섬은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많은 산과 깨알 같은 섬들. 그래서인지 트레킹 코스가 세세하게 개발돼 있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인근 섬으로 가기도 한다.
홍콩은 차량 소유가 대중화되어있지 않다. 큰 이유는 주차비 부담으로 보인다.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주차하려고 해도 한 달에 육칠십만 원이다. 대신 홍콩섬에 살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인근 섬으로 나들이 가기는 수월하다.
홍콩섬만 해도 센트럴, 애버딘, 노스포인트, 사이완호, 쿤통, 삼가촌 등 셀 수 없이 선착장이 많다. 대표 격인 센트럴에는 선착장이 10개 있다. 1번 선착장은 정부 전용이고, 8번은 해양박물관, 9-10번은 퍼블릭이니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6개이다.
7번 선착장은 건너편 구룡반도의 침사추이로 건너가는 스타페리를 타는 곳이다. 2~6번 선착장에서 인근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2번 파크아일랜드(마완), 3번 디스커버리베이, 4번 라마섬(용수완, 소쿠완), 5번 청차우, 6번 무이오, 펑차우) 도장 깨기 하자는 심정으로 센트럴에서 출발하는 페리는 종류별로 다 타봤다.
대부분의 섬에는 공중 샤워실이 구비된 해변이 있어, 가벼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선착장 근처로는 딤섬이나 국수를 파는 가게들이 있어 점심을 해결할 수 있고, 험하지 않은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바닥이 시멘트라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 란타우섬의 디스커버리베이와 파크아일랜드는 서양인이 사는 고급 아파트촌이 조성되어 있고, 나머지 섬들은 로컬색이 강하다.
7번 선착장 타는 스타페리는 홍콩섬 너머로 가는 이동수단이다.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에는 교량이 없다. 대신 해저터널이 동, 서, 중앙에 하나씩 총 3개 있다. 버스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가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차라리 페리를 타는 게 금방이다. 나는 일부러 에어컨이 없는 구역에 타곤 했다. 페리가 운행을 시작하면 연료인 기름냄새가 여름의 더운 바람과 섞여 들어와 땀을 간신히 식히곤 했다. 눈 안에 들어온 건 유명해서 되려 현실감이 없는 홍콩의 야경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이완호에는 동룡섬으로 가는 선착장이 있다. 개발이 거의 안되어 초창기 홍콩섬의 모습과 가깝다고 한다. 해변이 절벽이라 물놀이는 어렵고, 섬을 한 바퀴 돌아 트레킹 하기에 그만이었다.
홍콩섬에 살면 배를 타지 않아도 남쪽으로 물놀이를 갈 수 있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스탠리나 리펄스베이 같은 해변으로 가곤 했다. 버스를 타야 하니 짐은 단출했다. 가방에는 큰 타월과 수영복 정도만 챙겼다. 데카트론에서 구입한 10리터 아이스박스에서 찬 맥주를 꺼내 마셨다. 출출해지면 편의점에서 한국 컵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모래밭에 누웠더니 벅찰 정도로 시야에 하늘이 꽉 찼다.
버스를 타듯 손쉽게 배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해변에 도착할 수 있는 건 홍콩 특유의 인프라다. 여러 해변과 섬을 방문했지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주말의 여가시간조차도 수많은 반복 끝에 더욱 뚜렷한 자국의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