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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Jul 31. 2022

(번외) 직장인의 필요충분조건

인사부 앞 보내지 못한 이메일

아래는 예전에 있었던 팀에서 팀원의 교체를 요청하며 인사부에 썼던 메일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해당 직원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교체를 요청한 것은 당시 팀의 업무 특성상 동 직원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직장인의 기본적인 자질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인사부 배상


지난번 상담을 통해, 통상의 이동 주기 전에 직원을 타 부서로 전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씀 주셨지요. 이에 아래의 글을 씁니다.


1.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역량


회사에 고용된 직원에게는 요구되는 자질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특정 업무 혹은 특정 직위에 요구되는 자질도 있습니다. 우선 회사원이면 기본적인 업무지식을 바탕으로 업무자료를 파악하고 이해관계자와 효과적으로 음성 및 서면으로 의사소통(여기에는 상급자 앞 보고가 포함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저희 회사 같은 경우 계약 관련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고, 해외 바이어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업무 프로세스라는 수단을 갖추는 것입니다. 최소한 회사 몇 년 이상 다닌 직원이라면, 처음 혹은 오랜만에 하는 업무라도 몇 개월 지나면 다들 곧잘 합니다. 왜냐하면 업무 프로세스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짬밥'이라고도 부릅니다.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지,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자료를 참조하고 누구를 통해 모르는 것을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프레임워크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업무를 그 틀에 적용하여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회사원의 기본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직원과 일하기 전까지는 회사원의 기본 역량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비록 업무역량이 차이가 있고 더러 업무 열의가 없더라도 기본 역량만은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와 서야 깨닫게 된 까닭입니다.



2. 구체적인 정황


특히 이 부서의 경우 사업 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계약서, 입찰서 등 상당한 분량의 다수의 영문자료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이중 핵심을 추려서 업무에 적용하는 능력이 매우 요구됩니다. 또한, 이해관계자에게 저희 회사의 입장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이 국문/영문을 망라하여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 직원과 지난 3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업무자료 인지 능력, 업무 처리능력, 문서 작성 능력, 영어 능력 등 업무에 요구되는 전반적인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ㄱ. 국/영문을 막론하고 업무 자료를 파악하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특히 전체적인 틀에서 업무를 파악하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상사로부터의 업무지시 혹은 타 부서로부터의 검토 요청이 있을 경우 1) 본인이 소화 가능한 단순한 업무로 치환하여 단편적으로 대응하거나 2) 대응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ㄴ. (아마도 ㄱ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업무자세가 수동적입니다. 스스로 업무를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지시받은 개별 단위업무만을 처리합니다. 알고도(knowingly)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직위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결여되어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사례 1) 현지 주재원이 XX.XX일자 메일을 통해 A 사업의 계약서 문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조치가 없었습니다.


(사례 2) B 사업의 경우 금년말 최종 완공 예정으로 그전까지 공사계약이 체결되어야 하는 시급한 건입니다. 이에 현지 주재원이 타임라인을 제시하고 컨펌을 요청하였으나 대응이 없었습니다.


(사례 3) XX.XX일자 영어로 진행된 C사 와의 사업 협의에서 전혀 발언 및 회의에 기여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동 직원의 하급자가 보완 발언을 하였습니다.



ㄷ. 기본적인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합니다. 서론, 본론, 결론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습니다. 즉, 서론에 본론 내용이 나오고, 본론에 서론이 반복되며, 본론에 없는 내용이 결론에 나옵니다. 제목과 본문 내용이 불일치하며, 기존 자료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인용함으로써 문서의 전체적인 일관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사례) XX.XX자 D사 사업 계약 변경 승인(2차) 초안 등



3. 팀장에 미치는 영향


뽑아놓고 보면 이런저런 직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각 직원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자리에 놓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소한 이 직원은 현재 이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인사부에서는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이르게 이동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큰 사고에는 징후가 있으며, 그것을 사전에 알아채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팀장의 책임이자 역량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직원이 의당 했어야 할 일을 대신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대가 역시 따릅니다.


(매우 구태의연한 비유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팀장은 구두닦이에 비교하면 구두를 찍어오는 "찍새"입니다. 영업직이죠. 제가 일감을 물어오면 구두를 닦는 "딱새"들이 처리를 합니다. 팀장이 직접 구두를 닦지는 않습니다. 다 닦은 구두를 검사하는 역할은 합니다. 손님들에게 돌려줬을 때 클레임을 피하려면요. 최종 책임은 팀장이 집니다. 어쨌든 각 딱새들이 제대로 닦아줬겠지 하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찍새가 딱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찍새는 시간이 부족해서 구두를 많이 찍어올 수 없습니다. 찍새가 찍새의 역할을 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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