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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Jun 04. 2023

직장인 상대성이론 (하) : 폭탄

부부 중 누가 더 억울할까


"저는 애가 셋이에요."

"아들 하나, 딸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요?"

"와이프가 딸이나 다름없어요. 집안일에 도통 관심이 없고.. 최근엔 바디프로필 찍는다고 열심이구요."

"사실 성인이 이제 와서 바뀌지는 않죠. 아쉬운 사람이 움직일 수밖에 없더라구요."

"제가 다 하다가 골병들겠어요."


동료 C의 한탄이다. 이런 푸념은 여직원들에게 많이 듣는데, 드문 일이다. 


모든 부부의 단골 부부싸움 주제는 집안일 분담이다. 부부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으로 나뉜다. 여성은 출산으로 인해 주양육자가 될 확률이 현저히 높으므로, 부지런한 쪽이 되기 쉽다. 동료 C처럼 반대 경우도 은근히 있지만, 당연히 C의 배우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한쪽만 듣고 판단해선 안된다. 


부지런함의 척도는 누가 더 참을성이 없느냐이다. 부실한 식단, 지저분한 집, 방임하는 육아를 보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일 할 수밖에 없다. 한편, 그건 부지런한 쪽의 관점이다. 게으른 쪽은 (판단이 아니라 편의상 그렇게 부르자) 지금이 최적의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름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을 테고.


남편은 내가 '게으른' 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이 필요 이상으로 집안일에 에너지를 쓴다고 여긴다. 집안일을 꽤 하는 사람이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게으른 쪽이 된다.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 집은 맞벌이이고 따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을 두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하여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 이를테면 요리보다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고 싶다. 다 잘하려고 하면 언젠가 방전된다가 내 지론이다. 





폭탄 질량 보존의 법칙: 주변에 폭탄이 없다면 나는 아닐까 자문해 봅시다


직장에는 업무 성과가 떨어지거나 해서 주변 동료를 힘들게 하는 폭탄이 있다. 누구도 자신이 폭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스스로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부부가 배우자보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직급을 막론하고 (1)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구급이 있고, (2) 부서에만 알려진 숨은 보석(?) 같은 직원도 있다. 인지도뿐만 아니라 (1) 아예 능력이 안되거나 (2) 고의적으로 게으른 쪽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폭탄계 선배들을 보면서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어차피 같은 월급 받는데 저렇게 맘먹으면 회사생활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렇게 맘먹으면'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글렀다. 애초에 고민해서 결정한 게 아니라는 거다. 


과거 부서 팀원 중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저성과자가 있었다. 연차가 꽤 찼는데 승진을 하지 못했다. 데리고 일을 해보니 납득이 갔다. 주어진 몫을 하지 못했다. 반면 고과상담을 해보니 불만이 많았다. 회사가 본인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자기 객관화가 안되나 하고 놀랐다. 


남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해선 모두들 후하게 평가한다. 최소한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균 이상이면 평균은 더 이상 평균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환경에서 나름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남과 1대 1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저성과자에게 스스로 남과 비교하여 처지를 인식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그보다는 능력과 성과에 걸맞은 평가 및 적재적소에 두는 인사배치에 집중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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