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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메르인 Apr 30. 2023

'위장론'으로 알아보는 인생의 불공평함

빌게이츠는 윈도 운영체제 말고도 "인생은 불공평하다, 인정해라.(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실 그가 말했는지 확실하진 않다. 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소화능력은 불공평하다. 인정해라."


첫째 아이는 3.0kg로 태어났다. 하위 25프로였다. 그럼에도 까탈스럽지 않게 주는 건 잘 먹었다. 소화불량도 별로 없었다. 성격도 무던하고 별 탈 없이 건강하다.


둘째는 3.5kg의 우량아로 태어났다. 젖 빠는 힘이 좋아 초반엔 잘 먹고 잘 잤다. 막상 밥을 먹기 시작하자 배탈이 잦았다. 성격도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첫째보다는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것 같다.





성공의 조건은 뭘까.

명석한 두뇌? 타고난 체력? 끈기?

다 맞다. 하지만 그 모든 바탕에는 튼튼한 위장이 있다. 물론 천재들은 예외로 하고.


나는 위장이 안 좋은 편이다. 노력으로 고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 위염이 왔다. 첫 내시경은 24살 때였다. 속이 안 좋다 보니 얼굴이 자주 찌푸려졌고 오해도 꽤 받았다. 저녁 술자리도 꺼려졌다.


차는 기름이 없으면 달릴 수 없다. 소화 잘되는 사람은 연비 좋은 자동차와 같다. 일상의 에너지는 먹는 것에서 온다. 집중력도 결국 체력의 문제다. 먹는 걸 싫어하는데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는 힘들다. 유명한 투자가인 워렌버핏은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젊음이라는 기초 체력을 소진한 중년 이후에 접어들면 소화력의 중요성은 배가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는 분들은 대체로 돌도 씹어먹을 위장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1)  H 이사하면 하회탈이 떠오른다. 눈가에 주름을 지어가며 항상 해사하게 웃었다. 그는 먹성이 좋았다. 자주 식사자리를 가져도 메뉴가 겹치지 않았다. 매일 "뭐 먹을 거 없나?" 하며 술, 밥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부하직원에게 메뉴 추천을 하라면서도 고르는 것은 결국 본인이었다. 전날 과음을 해도 해장술을 하자며 숙취로 너덜너덜해진 직원들을 모았다. 업무능력은 그만그만했지만, 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 회사 임원을 역임한 후 재취업하여 여전히 잘 산다고 들었다.


2) S 상무는 체력을 타고났다. 학생 때의 일화다. 에너지가 넘쳐 밤새 공부해도 힘이 남아돌았다. 그러고도 잠들 수 없어 운동장을 몇 바퀴 달려 힘을 빼야 했다. 그래서인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직원들을 들들 볶아댔다. 주량도 남 부럽지 않았다. 체력이 있어야 남도 괴롭힐 수 있다.


3) D 회장도 넘치는 체력의 소유자였다. 환갑을 넘어서도 수많은 간담회와 해외출장을 소화했다. 바이어를 만나러 네팔 출장을 갔는데 등산화를 챙겨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히말라야라도 오를 생각이었던가.


"이번 출장 시에 산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 예, 온 김에 입구만 한 삼십 분 둘러보실까 해서요."

"그러지 말고 차에서 내려서 여기 좀 올라갔다가 오지."


그곳은 길도 없는 산기슭이었다.


그 역시 잘 먹었다. 장염이 걸려도 죽 만으로 구성된 코스요리를 먹어가며 오찬간담회를 진행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땐 차고 딱딱한 빵과 치즈를 먹으며 버텼다.




위장상태가 비슷한 동기 K와 나는 뛰어난 메타인지 능력이 있다.


"나 또 장염 걸렸어."

"나도 걸렸는데, 요새 유행하나?"

"우리는 이래서 크게 되긴 글렀다야.."


노력해서 다 되지 않는단 걸 이제는 안다. 운명론은 아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방법을 찾으려 한다. 남하고 비교하는 것만큼 소용없는 게 어디 있나. 스트레스성 위염을 면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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