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이라니요
K에게
가끔 연락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차일피일 약속을 미루다 어느새 일년가량이 훌쩍 넘었었는데 이틀 전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도 자주 보았었고 몇번 사적인 대화도 나눴던 사이지만 카페 사장과 손님으로 만났던 관계였을 뿐이기에 사는 이야기 정도나 겉치레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바빳던 친구였습니다. 일을 세 가지나 하면서 쉬는 날 하루 없이 산다고 했습니다. 카페를 방문하는 것도 보통 늦은시간 친구들을 챙기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뻐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했습니다. 억지가 보이는 밝은 웃음에 더욱 그랬습니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하나 걱정을 많이했습니다.
비슷한 업계사람도 아니고 살아가는 스타일도 참 많이 달라보였거든요. 특히나 요즘은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더욱 아끼고 있어 괜찮을까 고민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산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등산도 좋다고.
왜인지 모르게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화주제에 대한 고민은 잊혀지고 등산장비 같은건 하나도 없다는 그 친구를 위해 적당한 산책을 할 수 있게 남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네. 우리가 서울을 내려봤던 그 남산이요.
남산 아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걱정했을 필요가 없이 우리는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로의 근황과 사랑했던 추억, 앞으로의 꿈 등등 평범하지만 즐거운 주제의 대화들이었습니다. 남산을 잠시 오르다 주차 문제로 서둘러 내려와 백운호수로 가서 식사도 했습니다. 네. 언젠가 우리가 새해를 보러 갔던 그 곳입니다.
긴 대화가 요즘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경치좋은 그곳에서 산책을 해야지 했던 계획은 까맣게 잊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오랜만에 산책하기 좋은 겨울날씨였기에 돌아오는 길에 아쉬움을 곱씹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또 그리워했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시간 만큼 우리가 만들었던 추억만큼 너무나 많은 곳에 당신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곳에서 아픈가 봅니다.
대화 중에 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K. 당신이 내 마지막 사랑이고 사람이 될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장난스레 말했고 당신은 코웃음치며 넘겼지만 제 가슴 속에서는 정말이지 진지한 진심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그리움이 끝나는 날까지 그 말을 지키게 될겁니다. 새로운 사랑이라니요. 지금의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헤어진 직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기 전, 그저 어둔 공허함이 가득찼을 무렵에는 예전 호감이 있던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인연은 아니었는지 이후의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고 쌓여가는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암반이 되어 마지막 사랑이라는 그 말을 돌에 새겨진 글 처럼 그 말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K.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거란걸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사람인걸요. 조용히 숨죽인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암반 위로 끊임없이 당신의 이름을 새기며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잘 지내시길 내 시간이 다하는 그 날까지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