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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밤

노래를 부릅니다

by 숨결

K에게.

오랜만에 따뜻해진 날입니다.

날이 좋을 때는 언제나 밖으로 나가던 당신이었는데 오늘은 또 어떤 예쁜 곳을 찾아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제까지 비가 살짝 내려 바닥이 적당히 젖어있는 날이니 산이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보단 어딘가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갔지 않을까합니다. 아직 1월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그 곳에서 밀린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있을것도 같네요.


얼마전에 봤던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아직 어른이 되었다고 여겨본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추억 속에 남겨져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많은 것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음에 나 역시 그런 때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허탈함과 허무함에 빠질 때면 노래를 듣곤 합니다. 조금은 세월이 지난 오래된 노래들입니다. 옛날 노래들에는 가슴 절절한 가사와 애절한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누군가들과 어설픈 대화를 나누는 것보단 나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같은 노래들을 몇번이고 듣다보면 흥얼흥얼 따라부르게 되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운전을 하며 다니는 동안에는 큰 소리로 따라 불러보기도 하네요.


어슴새벽 갑자기 노래를 남겨두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내겐 남은 것이 없어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던게 아닐까합니다. 아니 내게서 남겨질 연들을 위해 나를 갈무리하여 남겨두고 싶었던게 더 가까울듯 합니다. 완전한 이별을 위한 준비이자 의식인 셈입니다.

작은 방으로 된 노래방에서 영상을 찍어 보았는데 아무래도 맘에 들지가 않았습니다. 알록달록 뱅글뱅글 돌아가는 조명은 왠지 어울리지가 않았거든요. 쩌렁쩌렁 울리는 앰프의 소리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단아하고 정갈하게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장비를 사고 녹음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샀습니다. 불안정한 상태라 배우고 익히는데 두달이 넘게 걸려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제 처음으로 녹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게 너무 많지만 그래도 녹음을 하고 저장해 둘 수 있을 만큼의 기본은 할 수 있게되었음이 참 다행입니다.


좋아했던 노래들을 하나씩 부르고 남겨볼 생각입니다. 썩 괜찮은 실력은 아니지만 잘난 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남긴 소리를 추억하고픈 사람이 있을테니까요. 알게 모르게 그 속에는 그리움이 많이 묻어 날지도 모릅니다. 내게 채워진 것은 오직 그리움이라 뱉어내는 소리에 당연스레 담겨 있을 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작은 기도를 해봅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가 그대가 듣고 있는 노래와 같은 이름이었으면 합니다. 나의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내가 부르는 노래의 이름이 그대가 듣고 있는 노래의 이름과 같다는 작은 소망 하나만 이루어 진대도 나는 미소지을 수 있을것만 같거든요.


친애하는 그대가 부디 같은 이름의 노래를 들어주길 바라며 오늘 밤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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