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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밤

뒷산

by 숨결
뒷산


안녕.

미안합니다. 오늘은 조금 친근하게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안녕..

안녕..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외칠 곳이 없어 나는 말을 할줄 아는 벙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내 가슴이 한시도 쉬지 않고 꽉 막혀있는 이유가 이것이었나 싶습니다.


이사를 오기 전 부동산 아주머니와 지도를 보면서 집 뒤쪽으로 산책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생각이나 해가 저물기전에 나가보았습니다. 동지가 지나고 입춘이 지나 겨울도 어느덧 끝자락에 다다르니 일찌감치 떠나던 태양도 조금은 더 머물러주고 있어주었습니다.

산책로는 경사가 좀 있지만 야트막한 뒷산의 산길이었습니다. 작은 절이 있고 그 뒤로 어느 종가집의 무덤과 이름모를 멀리 떠난 옛사람들이 묻힌 크고작은 무덤들이 간간히 보이는 산이었습니다. 그 풍경을 흘끗흘끗 탐해가며 나무가 빼곡한 산길로 들어서자 나는 익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의정부에 살 때 종종 찾아갔던 도봉산의 풍경일까. 고향집 뒷산의 풍경이던가. 언젠가 당신과 올랐던 강화도 마니산의 풍경일까.

아하. 당신이 살던 집 근처 무덤이 많은 공원의 산길과 참 닮았습니다. 망우리공원이라고 공원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실은 공동묘지로 쓰고 있던 산의 길을 정돈해둔 산책길이었습니다. K 당신은 그곳 중턱쯤에서 바라보던 당신 동네의 풍경을 참 좋아했습니다. 밤 야경이 너무 예쁘다며 가로등 하나 없는 그 길을 핸드폰 플래쉬 빛에 의지해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실은 그리 감동스러운 풍경은 아니었습니다. 애매한 거리와 애매한 높이에서의 야경은 그동안 우리가 함께 보아왔던 야경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좋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걸 나에게 나눠주고 당신이 좋았고 그 어둠 속에서 해맑게 웃던 당신이 좋았거든요. 아마도 그날에 떠있던 달보다 당신이 더 밝았을겁니다.


조금만 더 많이 걸을걸 그랬나봅니다. 피곤하다고, 그냥 방안에서 당신을 안고있고 싶다고 투정부리지 말걸 그랬나봅니다. 조금더 많은 풍경을 당신과 함께할걸 그랬나봅니다.


K 그대는 이제 나와 함께하지 않는 풍경을 담고 있겠지요. 나 역시 당신이 없는 풍경을 하나씩 가슴에 담아가고 있습니다. 마냥 아름답지 못한 슬픈 풍경으로 기억되고 적층되어 갈것입니다. 앞으로는 이 기억들이 풍화되고 또 다른 기억에 가리워져 잊혀질 수 있을까요.


당신만큼은 아프고 슬프지 않은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보아주세요. 행복하고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만을 기억에 남기고 쌓고 그 위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계속 쌓아가주세요. 언젠가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름다운 동산에 올라있는 당신을 보고싶습니다.


밤이 늦었네요. 나는 이제 잠이 들어야겠습니다.

오늘만큼은 꿈속에서라도 행복하고 싶네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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