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번째 밤

쉼표

by 숨결
쉼표



K.당신에게 지난번 편지를 보낸고 한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동안 나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나는 숨막히는 가슴 때문에 주먹으로 내 가슴을 두드리지 않아도 되었고 울며 잠들지도 않았으며 제발 꿈속에서라도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하면

나는 그저 바쁘게 살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도록 바쁘게 살았습니다. 바쁘게 살 수 밖에 없도록 일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같이 업무미팅을 잡고, 카페로의 출근을 귀찮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루에 일만자 이상의 글을 써야했고 두 시간 이상의 운전을 해야했으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기도 해야했습니다. 그사이 틈틈히 반 강제적으로 책을 읽어야했을 뿐 아니라 모임들을 관리해야했고 투자정보를 공부하는데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비어있는 시간이 생기면 자기를 먼저 처리하라 달려들었습니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 시간을 내어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성공하지를 못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한달만에요.


고백하자면 실은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더 이상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미룰 수는 없었던게 아닐까합니다.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당신을 그리워할 자격을 어서 빨리 만들고 싶었습니다. 많은 돈을 벌고 더 멋진 이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나는 이제 당신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소망했습니다.


그동안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고, 쓰고 싶은 편지가 수십장이었지만 더 이상은 말뿐인 그리움을 그만두고 싶어 그 소중한 시간을 잠시 미뤄두었습니다.


어쩌면 그리움을 쉬었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리워하는 방식을 바꿔버린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그리움의 늪에 빠져있었다면 이제는 당신을 만나러 가기 위한 지극히도 현실적인 방식을 택한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바라는 내일은 오직 K 당신뿐이니까요.

지금 내가 가진 내일에는 당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오늘만 살아갑니다.

내 모든 계획표에 적힌 내일들 중 내가 기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걸 당신은 알까요. 꿈같은 막연한 기대 속에 지나간 날들의 당신을 다시 그려보는 허무한 내일을 당신은 알까요.

내가 채워가는 오늘은, 내일 내가 죽어 없다 하더라도 애끓는 아픔으로 당신을 바라며 하루를 채워보려 애썼던 시간들로 가득채워보려함입니다.


K

나는 오늘부터 다시 이 편지의 끝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편지처럼 한달간 묵힌 글은 억눌린 마음을 토해내는 글밖에 되지 못한다는 걸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의 작고 소소한, 때로는 슬프지만 또 때로는 간질거리는 즐거움이 있는 편지를 내일부터 다시 적어보렵니다.


그렇게 나의 하루를 받아주세요. 나의 하루를 기억해주세요.


밤이 늦었습니다. 편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당신의 꿈까지도 오늘의 하늘처럼 쾌청하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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