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입니다
금계국입니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노란빛으로 가득찼었나 싶을정도로 요즘 곳곳에 금계국이 가득 피었습니다.
그리고 금계국만큼 새하얀 개망초꽃도 여기저기 한가득입니다.
세상이 꽃으로 가득차 보인다는건 참으로 행복한 일일 수 없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돌보지 않아도 이토록 가득이 피어날 수 있는 꽃이 있다는건 나에겐 축복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을 향해 비어가는 나의 마음을 채워주는 건
오직 초월적 사랑이 담긴 세상의 아름다움이기에
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바라보려고 부던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걷힌 바다의 수평선과 아름답고 파도소리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집 뒤의 절로 향하는 야트막한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며 보이는 가로수의 풍경과
순서를 바꿔가며 피어오르는 꽃들이 가득한 꽃밭이
나의 작고 소중한 일과가 되어갑니다.
카페 창 밖으로 내리는 빗줄기와
따뜻한 커피 한잔에 채울길 없는 시간을 채워보기도 합니다.
그런 위로의 풍경들 안에서 요즘 나에게는 금계국이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언젠가 우리가 지금과 같이 뜨거워진 어느날의 드라이브를 즐기다
'저 길가에 가득핀 꽃의 이름이 뭔지 알아?'라고 당신에게 묻고
'아니. 모르겠어.'라고 답하는 당신에게 나는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저건 금계국이야.' 자랑스레 아는척을 할 수 있었던 꽃이란게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알량한 아는척이 왜그리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을까요
여름의 초입에 피어 한창 진해진 여름내내 피어있을 금계국은 이제 해마다 당신을 떠올리게 할것입니다.
초라한 내가 당신에게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허세를 부릴 수 있었던
작고 소중한 시간을 평생 기억하게 만들것입니다.
K.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당신과의 추억을 잊어갈것입니다.
시간이란 내가 이겨낼 수 없는 정말이지 냉정한 존재이니까요.
정말 어쩔 수 없는 망각이라 부르는 기억의 소멸 앞에서
'시간님'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잊어야 한다면 당신과의 모든 추억을 마지막 순간 한꺼번에 잊혀지게 해주세요
잊어야 한다면 우리가 헤어졌단 사실마저도 잊혀지게 해주세요
잊어야 한다면 당신의 기억속에서도 내 존재가 산산히 깨어지도록. 지워지도록 해주세요
K 당신에게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부디 내가 당신을 잊는 것보다 먼저 나를 잊어주세요
당신 기억의 임종은 내가 지켜보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잊었다는 것을 당신이 먼저 알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