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밤

운명의 장난

by 숨결
운명의 장난




K.

당신은 운명이란걸 믿나요.


다들 그런게 있겠어? 하면서도 운명이란 단어에 귀가 솔깃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됩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지금 제 나이쯤이 되면 미래가 궁금한 사람이 많아지나 봅니다.

궁금함을 넘어 간절해지는 사람이 많다고나 할까요.


저도 참 간절합니다. 많은 것들이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사주니, 신점이니, 타로니 하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옵니다.


신점은 호기심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어쩐 연유에서인지 때마다 사정이 생겨 가본적이 없습니다.

소위 점쟁이, 도사님이라 부르는 그분들은 제가 가려고 하니 교통사고가 나거나, 오지 말라고 거절을 하네요.


사주는 몇 년전 한번 보았다가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아주 크게 될 수 있단 말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었습니다. 그 한 번이면 되었다 싶어 그 뒤로는 신경쓰지 않고 살았는데 근래 들어 주변에 취미로 사주를 보는 분들이 생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잘 맞아 떨어져서 신기했습니다.

이런저런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많아 들은 그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힘든 시기가 지나고 잘 살게될 사주라고 했습니다.

재주가 너무 많아 되려 재주에 눌릴 정도라고도 하고 여자가 주변에 많다고도 합니다.

불이 많은 사주라 태양처럼 살거라고 했습니다.

세세한 이야기들듸 끝은 어쨋든 아주 좋은 사주라고 해줬습니다.


어제는 사주를 공부하시던 분이 타로를 새로 배워보겠다며 타로카드와 책을 가져왔습니다.

제 운세를 보아주는데 처음 해보는거라 그런지 맞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 '이게 뭐야' 하면서 오히려 재미있어했습니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해 타로를 볼 줄 아는 척 하면서 반대로 제가 타로카드를 손에 쥐었습니다.

알다시피 제가 말로 사람을 구슬리거나 하는건 참 잘하는 편이었죠. 그럴싸하게 '하는 척' 도 잘 하구요.


재밌게도 제가 하는 카드 풀이를 철썩같이 믿으며 신기해 했습니다.

곧바로 아무것도 모른단걸 말하긴 했지만 카드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게 재밌었습니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의 의미를 연결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니.

운명이란 신기루 같은 허상을 이야기하기에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가볍게 이야기를 해나갈 재미있는 도구입니다.


저녁에 난 인터넷으로 카드를 주문했습니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운명을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내가 해주고픈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장난같은 소소한 이야기가 만들어질거라 기대됩니다.

카드를 쥐고 있는 내 손과 카드를 읽어가는 내 입은 이제 운명을 매개로 장난스러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지요.


고달픈 내 삶이 운명이라 부르는 초월자의 장난이라면

나는 그런 장난은 무심히 넘겨버리고

내 손 위에 올려진 카드 운명을 장난스레 가지로 놀아보렵니다.


한번씩 당신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점을 봐드리겠습니다.

좋지 않은 카드가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제 나는 운명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 되었으니 당신의 앞날의 빛이 될 이야기를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유월의 어느 밤으로부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흔일곱 번째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