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네번째 밤

화내지 않는 사람

by 숨결
화내지 않는 사람





K에게.

이미 잠들었을 당신을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조금 생각해 보는 날이었습니다


정말 조금만 생각해보았습니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하는 전부도 아닌 일부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건져낸 나에 대한 아주 작디 작은 한 가지는

나라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란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말했었죠

우리는 왜 싸우지 않느냐고.

싸우지 않는 우리가 이상하다구요.


그때는 그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좋은건데 왜? 라는 물음만 떠올랐습니다.

아마 K 당신도 그 물음을 왜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줄 몰랐었던 것이겠지요.


그땐 당신에게 '너에게 화내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했지만

오늘에서야 다르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참 이질적인 사람입니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입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해야 할텐데

나는 내 일이 아닌 것마냥 심드렁해 했습니다.


'뭐 어쩌겠어.' '그런가보다.' '어쩔 수 없지.'


아니면 화를 내기에 앞서 감정을 내세우기보단 어서 빨리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몰두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참 재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인것 같지만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인듯 하지만 정작 내 앞의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가까이 두기엔 께름칙했으리 생각됩니다.


나는 왜 그럴까요.

나는 왜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왜 숨기고, 억누르고, 참아내는게 당연한 사람이 되어있는 걸까요.

나는 왜 나를 그런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만들어왔을까요.


그러다보니 내가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도 진짜인지 의심스러워집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내가 웃는 모습은 절대 당신 앞에서 보여주던 그 웃음의 모습은 아니란 것입니다.


한 없이 바보같더라도

웃느라 못생겨지더라도

내 웃는 모습을 좋아하던 당신이 있었기에

내 웃는 표정은 분명 당신을 닮아갔고, 닮아졌을 텐데

이젠 닮아갈 웃는 얼굴이 없으니까요


그래요

여전히 나는 화를 내지 않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웃지도 않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얼굴보다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을 비춰

당신과 나를 함께 겹쳐보던 그 때가 더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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