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늦는 남자
매일 늦는 남자
안녕하세요 K.
나는 오늘도 모두가 잠든 새벽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일찍 자야지 하면서 아까 한시께나 자리에 누웠는데
눈을 감지 못할 정도로 근래의 내 머리속은 비오는 날의 개미떼처럼 혼란스럽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불안증과 집중력장애는 잠마저 앗아가 버렸나봅니다.
새벽 3시가 되어서도 잠들지 못하면 그냥 잠을 자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지 하면서도 결국 40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책상에 앉았네요
오늘은 시골집에서 집으로 올라오느라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배우로 활동하는 우리 매장직원은 마침 오늘이 오디션이었고
늦게라도 출근한다고 하였으나 오디션 일정이 미뤄져 결국 출근을 못했습니다.
예약된 손님이 있던터라 대체할 사람도 없었고 참 난감했지요
어찌어찌 직원도 없이, 음료도 없이 손님에게 공간만을 내어드리고 한숨을 돌리면서
항상 일정과 약속 시간때문에 당신 속을 썩였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한심한 습관입니다. 자주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럴때마다 당신에게 되려 당당하게 말했지요.
'처음 만나는 날 세시간이나 늦었던게 누구더라?'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당신은 퇴근을 허락하지 않는 회사로 인해
여섯시의 만남을 아홉시로 미뤄야만 했었습니다.
덕분에 나는 당신에게 세시간을 기다려준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었더랬지요
K
이런 이야기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지금에서야 고백합니다.
저는 사실 그날 한 시간 가까이 늦었었습니다.
서둘렀더라면 삼십여분정도 늦었겠지만 먼저 늦을 것 같다는 당신의 연락에
여유를 부리며 도착하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지요
당신이 회사에서 평소와 다를바 없이 일찍 퇴근을 했다면
저는 당신에게 한 시간이나 늦은 사람이 되었을겁니다.
당신과 만나는 5년이란 시간동안 이 사실을 한번도 말한적이 없었습니다.
기나긴 시간동안 당신을 속여왔지요
한 번씩 말해버리고도 싶었지만 이미 한참이나 쌓인 거짓말은 시작을 들춰내기에 너무 무거워졌었습니다.
K
나는 이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당신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이,
당신을 그리워하며 쓰고 있는 이 편지들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입니다.
내 평생 지금처럼 나 스스로를 망가뜨려본적이 있었던 적이 없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며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로서는 맞겠지만요.
당신이라는 나침반이 사라지고 방향을 잃은 여행자가 되어버린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변화에 휩쓸리고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아니면 정말이지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을 내리고)
예전같으면 두 시간이면 읽어낼 책 한권을 읽는데에 수십시간을 소모해야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요
만약 그리움이 거짓이 되는 날이 온다면
제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거짓말로 만들어 낸 그리움만 남아버리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헤어졌던 7월의 여름 날
장마로 떨어져 내린 빗소리의 울림 속에서 내 목소리를 찾아내길 바랍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허락해주세요' 라는 제 기도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