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덟 번째 밤

비 나리는 풍경

by 숨결
비 나리는 풍경





비가 오는 날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당신의 출근길 그리고 퇴근길을 걱정했던 날들이 있었네요

세차게 내리는 비에 때론 신발이 젖어버리고 바지 밑단까지도 흠뻑 젖었버린채로 사무실에 도착했다던 당신이 그 옛날에 있었지요

오늘도 당신의 운동화가 젖어있을까요?


당신이 예뻐보였던 수많은 순간 중 하나가 이렇게 비가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비에 젖어버린 신발의 축축한 느낌이 짜증이나고

이런 날에도 출근을 해야하는 하루에 토라질만도 할텐데

당신은 한 번도 투정을 부린적이 없었습니다.


'괜찮아. 옷은 금방 마를거구 신발은 슬리퍼로 갈아 신었어.'


내가 볼 수 없는 당신의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당신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할 사람이 맞을겁니다


그런 오늘

저는 손님이 없는 매장에서 비오는 골목의 풍경을 바라보며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창을 넘어 들어오는 빗소리가 '타닥타닥'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려 경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내심 밖으로 나가 흠뻑 비를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내리는 날은 이렇게

아늑한 공간에서 내리를 비를 바라보고 있거나

이도저도 아닌 축축함을 벗어나 아에 흠뻑 젖어버리는 일이 가장 즐겁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요?


그저 안락한 곳에서 드라마를 보듯 누군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즐겁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

즐거울 것 같아요


한 발짝 뒤에서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즐겁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사랑에 흠뻑 젖어버리는 날들이

이도저도 아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힘겨워하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것 같아요


아직 나는

비내리는 날 주인을 알 수 없는 집의 처마 아래 몸을 피해있고

처마는 충분히 길에 뻗어 있지 않아 내 신발과 바지는 마를새 없이 젖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딱 이런 모습입니다


글쎄요

많이 춥고 많이 지친걸까요

이제는 바닥이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차라리 처마 밑을 벗어나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지쳐버린 내 몸으로는 아무곳으로도 갈 수가 없어

누군가 손 내밀어 방이든, 빗속으로든 데려가 주었으면 소망할 뿐입니다

눈물이 글썽이는 눈을 빗물이라 속이며 내리는 비를 바라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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