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염치없는 사랑을 합니다

일흔 여섯 번째 밤

by 숨결

잠시만 염치없는 사랑을 합니다




"할 말이 있어."

예전에는 당신이 참 많이 하던 말이라 당신을 닮아가던 그 시간동안 이 말까지 저에게 스몄나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숨기고 가리는 것 없이 모두 이야기하자던 당신의 사랑에 대한 지론은 어느새 저에게도 사랑의 진리가 되어 가슴 속에 한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저는 제 연인에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글로서 남기고자 했던 당신과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자취를 이어가다는 것은 지금의 사랑에겐 크나큰 결례가 됨은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우리들간의 예의니까요.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쓰고 있는 이 글들을 쓰고 있었고 백번의 밤에 다다르고자 했던 계획을 얼그러뜨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과 동시에 허락을 기도했습니다

무례를 허락해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이었습니다. 백번의 밤으로서 이야기를 끝내고 싶다는 처량한 자존심과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초라한 강박에서 비롯된 부탁에 심장은 흐름을 잃고 부정확하게 뛰었습니다


"그래. 뭐 어때. 네가 원한다면."


어쩌면 예상했던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저는 그녀에게 감사의 키스를 전했습니다.

예상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한다면 그녀는 지나온 모든 사랑에 감사하다 말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지나온 모든 사랑에 미안함을 담아둔 저와는 정 반대로 말이지요.

그렇게 저는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또 한명의 마음이 내 시간에 겹쳐졌으니 이 편지들을 조금 더 아름답게, 조금 더 진하게 의미를 담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이 당신과 지금의 제 사랑 모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입니다.


물론 그녀는 이 편지를 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을거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왜냐고 묻지 않아도 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다칠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속내를 들킨 부끄러움을 감싸주려함이란 것을요.

네. 제 곁의 그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고마운 사람입니다.


사실 남은 편지들을 써내려간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정해둔 계획을 향해 달려가던 관성이 남아 한 번에 멈추지 못함일까요?

어찌되었든 나는 앞으로 스물 다섯 번은 당신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편지들이 책으로 엮어진다면 그보다 더 많이 당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젠 당신을 떠올리는 시간이 미안함은 가득하지만 더이상 아프지는 않거든요

K. 당신이 어쩔 수 없이 나를 떠올리는 어떤 순간이 있다면 저와 같이 아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상상한것처럼 언젠가 우리가 각자의 행복을 간직한채 어디서엔가 마주쳤을 때, 서로가 행복해서 다행이라며 숨겨둔 웃음을 안고 지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지가 많은 요즘입니다.

건강에도 유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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