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속에 스미는 숨결

아흔여덟 번째 밤

by 숨결
고요속에 스미는 숨결




나의 오늘은 평안함의 극치에 빠져버렸습니다

날카롭고 단단한 파편은 모서리 끝도 보이지 않는 고운 모래 백사장의 파도소리와 같습니다

사랑으로 비추고 여유가 불어넘치는 풍경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뒤흔들고 무겁게 가라앉히던 것들을 비워버린 나의 마음입니다.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카페는 감사하게도 좋은 인연을 만나 새주인에게 넘겨주었고 기관의 요청으로 열흘가량 컨설팅 하던 곳의 일도 마무리 짓고 떠나왔습니다. 주변에서는 가게를 그만두면 아쉬움이나 공허함이 밀려들지 않느냐 묻지만 저는 왜 아쉬움이 남아야 하는지 되물어야 할 정도로 홀가분하고 개운한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에는 완연한 여유가 스며들었습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내가 하는 일이라면 내일, 다음주, 다음달, 다음 분기, 다음 해를 준비해두어야만 불안해 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나의 계획이 잘 진행이 될까 하루하루 걱정하는 전형적인 J의 인간. 그토록 여유를 갈구하고 비워내려 발버둥을 쳤건만 결국은 모든 계획의 시작점을 지워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공허한 몸짓이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카페 하나를 지웠을 뿐인데.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아픈 손가락 하나를 잘라냈을 뿐인데 고질병과 같았던 아픔과 피로가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내일의 재고가 잘 채워졌는지, 이번달의 매출이 충분한지, 다음달의 매출은 어떻게 늘려가야할지, 매장의 정비와 청소는 언제 할지, 오늘의 퇴근과 내일의 출근 시간계획을 어떻게 할지, 새로운 계절메뉴와 행사 준비는 얼마나 해두어야 할 지 따위의 정말 하찮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잘한 부스러기같은 계획들을 끊임없이 짜맞추어야 하는 하루가 이제는 필요없는 날이 마침내 나에게 도래했습니다.


나는 압니다. 이런 여유도 찰나의 순간일 뿐이란 것을.

나는 또 계획을 세우겠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을 언제 끝내고 또 다시 일을 만들고 계획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사실 가게를 그만두기도 전부터 그만두게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을 해야할지 이미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마침표가 찍어진 일에 대한 홀가분함은 상상 속 계획으로만 잡아두던 그 날과는 형언할 수 없는 체감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 찰나의 여유는 내 삶에 신선한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 찰나의 고요함을 몹시도 소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는 인생은 반드시 정답이 아니며 여유의 고독을 즐기는 순간이 이토록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K

지금의 고요가 존재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카페를 그만두어서는 아닐것입니다. 그보다 조금 이르게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겠다는 나의 계획과, 나의 일상을 그만두고 홀가분해졌음이 그 먼저부터 드리워진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계획했던대로 '평생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테지요.


당신없이는 행복할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나는 평생을 아파할 수 밖에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치만 고작 당신을 잊어 비워냄으로 행복해 진다는 사실은 참 신비롭고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파하며 살겠다는 계획은 이제 수정된 계획을 짜맞추어 가며 무엇으로 채워 행복해져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전에 잠시만 이 찰나의 여유가 가져다준 고요에 빠져 쉬고 있겠습니다. 고요 속에 새롭고 낯선 숨결로 바람을 불어넣어 탁하게 정체된 마음의 공기를 빼내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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