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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Jun 30. 2022

사랑에 눈이 멀다

단편선#02

사랑에 눈이 멀다





 

‘러빈 글래스(Love in Glass). 당신의 세상을 찾아드립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버스 광고판에는 그 옛날 라이방(Ray Ban) 스타일 선글라스의 이미지가 공격적으로 박혀져 있다. 버스 안에는 러빈 글래스를 광고하는 방송이 잔잔한 클래식 선율의 음악에 실려 사람들의 귓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버스의 승객들은 구태여 광고를 들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이미 러빈 글래스를 착용하고 있었으니까.      

    

 2023년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 즈음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생겨난 것이다. 정확히는 특정 사물이나 사람이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명하게 보이지 않게 되는 증상이었다. 그 사물과 사람은 분명 공간 속에 존재 했으며 본래의 기능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고 그들의 기계음이든 목소리든 명확히 들을 수 있었다. 다만 보이지 않았다. 전염병처럼 퍼진 이 시야장애 증상은 세계의 모든 도시에서 안과들이 포화상태가 되어서야 병명이 정해졌다. ‘선택적 시각장애 증후군’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 지나면 모든 시각을 상실했다. 아니 이것을 상실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주변의 존재들이 하나씩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처음에는 벌레나 풀 따위가 보이지 않다가 점점 동물, 사람, 집, 도로 존재감이 큰 것들이 사라진다. 시각장애의 최종 단계에 들어서면 그들의 눈에서는 지구가 사라진다. 그들의 눈에서는 무한하고 공허한 우주의 한복판에서 우주미아가 되어버린 것마냥 끝없는 우주만이 보인다. 이 단계에서도 촉각이나 후각, 소리를 모두 느끼고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이 무너져 죽어갔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오늘은 어디까지 보이나요. 새롭게 안 보이게 된 사항들이 있나요?”

“아...월요일쯤 회사 건물이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변 건물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안경을 쓰셨을 때는요?”

“이전보다 길에 사람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것 외엔 아직 잘 보입니다. 이게 사람들이 길에 나오지 않아서인건지 제가 보이지 않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둘 다 일 겁니다. 저는 증상이 없지만 길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요. 어쩔 수 없겠죠. 하루에 수십 건은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판국이니. 어제도 차가 보이지 않게 된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죽는 일도 있었답니다.”      


현은 한 달에 한 번 증후군 감염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검진에 석 달 만에 방문한다. 보이지 않게 되는 내용들이 많아지면서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는데 병원까지 안내해줄 동행 서비스는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라 신청접수 대기만 한 달이 넘게 걸렸고 안내원을 배정받아 예약된 날짜에 검진 기관을 방문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언제나 하는 얘기라 다 아실테지만. 선택적 시야장애 증후군은 본인이 애착을 가지는 대상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나중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즉 관심도의 순서에 맞춰서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게 되는 순서를 나름 잘 정리해서 ‘있었는데 없어진 게 무엇인지’ 잘 살펴보면서 생활해 주세요. 러빈 안경을 쓰신다고 해도 시각을 잃는 단계를 한두 단계 늦출 뿐이란걸 명심하세요. 아직 치료법은 없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선생님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저 역시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판국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시달리고 있으니...”

“정부 방침이긴 하지만 다음 방문을 꼭 와야 할까요. 찾아오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서요.”

“네. 압니다. 이미 도시의 기능은 대부분 마비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이런말씀 드리긴 뭣하지만 사실 관리기구의 기능도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오시지 마시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군요.”     


현은 검진소 밖으로 나오며 입이 썼다. 치료는 기대할 수도 없고 그저 통계수치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방문해야만 하는 일. 발병 초기에는 각종 보호 지원을 받았고 검진을 거부할 경우 법적 처벌을 내리겠다는 행정명령이 있었지만 발병자가 크게 확산되고부터 지원도 처벌도 없어졌다. 지원을 해줄 사람도 처벌을 할 사람도 모두 눈이 멀어가고 있었으니까.     


‘러빈 글라스로 당신의 세상을 지키세요.’     


 거리 전광판의 삼분의 일은 러빈 글라스 광고가 비춰진다. 더 이상 전광판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서는 음성안내가 쏟아졌다.



러빈 글라스는 안경에 부착된 카메라 영상을 전기신호를 통해 뇌파로 보내는 역할을 해주었다. 안경은 인도의 한 공학자가 관련 연구를 하던 도중 증후군 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발견하고 곧바로 대량생산에 들어가 전세계로 퍼졌다. 전 세계의 공장이 멈춰가고 있는 상황에서 최우선적으로 가동되는 공장이었다.     

“끝나셨으면 집으로 가시죠.”     

“아...거기 계셨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현의 눈에는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안내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현의 눈에서는 이미 도시의 절반이 사라졌다. 건물들이 사라졌지만 도로와 땅이 아직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현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 외의 인간의 모습은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검진소의 의사도 발병 초창기부터 얼굴을 알아두지 않았더라면 텅 빈 투명한 사람에게서 검진을 받았을 것이다.     

안내원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은 증상이 심해진 이후 언제부턴가 매일 기도를 했다.     


‘제발. 부디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은 지우가 되도록...’     


지워져가는 시각에서 가장 애착이 있던,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마지막으로 남는다. 증상의 막바지에 이른 환자들의 마지막 존재는 대부분은 연인이나 가족이었다. 하늘도 땅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현은 어차피 잃어버릴 시각이라면 적어도 그의 사랑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남는다면 죽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왔어. 잘 기다리고 있었어?”

“왔구나. 삼천년은 지난 것 같아. 빨리 와서 안아줘.”     


그의 아내. 지우는 선택적 시각장애 증상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러빈 안경도 소용없어진 그녀의 눈에는 이미 땅이 사라졌고 하늘과 저 멀리 일렁이듯 보이는 바다 정도가 보였다. 일그러진 공간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아직까지 가족들의 모습만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볼 수 있어.”

“실컷 봐. 하루종일이라도 괜찮아. 평생이라도 좋아. 날 봐. 절대 날 지우지마.”

“응. 어차피 이제 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건 당신 뿐인걸.”     


그녀는 현이 없는 동안 눈을 감고만 있었다. 존재하고 느껴지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그녀에게 지옥인 것만 같았다. 차라리 암흑이었으면 좋았을걸. 우주 속의 미아가 되어버린 그 공허함과 무력함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현 뿐이었고 그녀가 눈을 뜬 채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지우야. 내가 너만 보일 때까진 날 지우지 마.”

“응. 너두 절대 날 지우지 말아줘. 보이지 않는 것보다 너한테서 내가 지워지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러워.”     

실제로 말기 환자들의 인터뷰와 사망에 이른 사람들의 유언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보이지 않는 고통보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 춤 출까?”

“그래.”     


얼마 전부터 지우는 현에게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현은 그런 지우를 위해 매일 같이 함께 춤을 췄다. 한쪽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 안아 왈츠의 선율과 맞춰 그녀를 인도했다. 지우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춤추고 있는 광경만큼은 눈에 담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현과 지우는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현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지우는 갈수록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눈을 뜨고 있는 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했다.

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의 집이었고, 그녀가 함께 있는 집이었기에 집안의 가구와 물건들이 아직 보일 뿐 집 밖으로 한발이라도 나가는 순간 그가 살고있는 10층 아파트의 허공에 둥둥 떠있어야 했다. 

 현은 집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침대에 누워 방을 한바퀴 둘러보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방을 나서 거실과 다른 방들을 아주 느린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오늘은 변기가 사라졌네.’     


집 안의 물건들도 하나씩 사라진다. 사소한 물건들이 눈에서 보이지 않기 시작했을 때는 오히려 청소를 한 듯 깔끔해져가는 기분이라 ‘뭐. 이런거라면’ 할 때도 있었지만 입지 않던 옷들, 쓰지 않던 그릇과 조미료들, 전자제품들의 부속품들 따위가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는 전혀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소중했던 것인걸...’     


띵동     

누가 찾아온 것일까. 요즘 같은 때에 섣불리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모두는 지워져가는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누구시죠.”     


인터폰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거나 그가 모르는 사람이기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리라.     


“...지우...집 맞습니까.”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이 모르는 누군가가 서 있음은 확실했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시후라고 합니다. 대학 선배고...지우를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지금 자고 있으니 잠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대학선배가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의문이 들었지만 어찌됐든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다. 당사자인 그녀에게 확인을 받고 판단을 해도 충분한 일이다.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귓가에 속삭였다.


“지우야. 일어나도 괜찮겠어? 시후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알아?”     

“시후오빠?”     


잠결에 비몽사몽이던 지우는 그의 이름을 듣자 눈이 번쩍 떴다.   

  

“...어?”     

“왜 그래?”     

“...너 왜 없어?”     


지우는 떴던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머리를 무릎사이에 파묻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 왜 없어! 너 왜 없냐구! 나...나는. 이제 아무것도...아무것도...”     

“진정해.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진정해.”     


현은 지우를 품에 안고 그녀의 떨림을 받아냈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내가 너를 안고 있다고 몸으로 말해주려 애썼다.     


딩동. 딩동딩동. 딩동     


‘제기랄. 이럴 때에.’     

현은 잠시 그녀를 다시 침대로 눕히고 현관으로 나갔다.   

  

“지우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잠깐만. 잠깐이면 됩니다. 얼굴만 보고 돌아가겠습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제발.”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아니 지우와 어떤 관계이기에 이렇게 간절하게 문 앞에서 빌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알고 있던 사이인 것만은 확실한데. 어쩌면 지금 그녀의 불안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들어오세요. 지금 지우가 누굴 만날만한 상태가 아니니 오래 머물진 말아 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현은 문을 열었지만 집으로 들어오길 허락한 이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세요.”     


현은 보이지 않는 그를 거실로 안내하고 그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떨림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괜찮아? 보이진 않겠지만 당신 선배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오랜만에 다른 사람 목소리라도 들으면 어떨까 해서 데려왔는데 한번 만나보겠어?”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옷과 머리를 갈무리해주고 얇은 이불로 감싸 안아 들어 거실로 나갔다.     


“지우야.”     


의문의 사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현을 바라볼 때가 아니면 눈을 뜨지 않던 그녀의 눈이 뜨였다. 그리고 현은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현에게 보이지 않는 그 사내에게 향해 있다. 그 사내가 거실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눈빛은 분명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불과 어제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이니까. 그렇기에 현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현의 시야에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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