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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싶어

솔직하게 고백하기

by 숨결



그는 오래된 책장의 한켠에

처음부터 읽혀지지 못한 한권의 낡은 책처럼

그저 꽂혀있었다

그건 아주 고요하게 잊혀진 처참한 슬픔이었다





15590567_10154846720829513_1194240637151396159_n.jpg photo by baejoosun





사랑받을 자격이란




사랑받을 자격이란 무엇일까


어느 젊은 날 오랜 짝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다. 지독한 사랑이었다.

4년간의 짝사랑.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에 실수에 실수를 거듭해야만 했던 시간들. 나는 언제나 솔직하지 못했고 마음을 감춰야만 했으며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백가지 이유를 홀로 탐구해나가야 했었다.


불꺼진 자취방에 누워 잠이드는 순간까지 영원같던 시간동안 당신과 전화는 '잘자요'라는 마침표로 끝나며 세상가장 따뜻함에 취해 설렌마음으로 잠이 들던 그 때에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을 한적이 없었다. 사랑을 몰랐기에.

적막한 도서관 열람실의 불이 꺼지고 집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나눴던 대화의 끝에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을 한적이 없었다. 사랑을 부끄러워했기에.

당신의 입술을 어루만지던 손 끝을 떼어내면서도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말하지 못했다. 사랑이 두려웠기에.



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는 흐릿해진 첫사랑의 추억을 곱씹는 나이가 되어 서 있다. 수번을 그렇게 곱씹으며 살아오다보니 '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다.



짝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을 포기하겠다는 사랑이구나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부분은 절대적으로 아닐테다. 그저 나의 삶의 방식은 '사랑을 주다'보다 '사랑을 받다'에 빠져있으며 사랑받지 못하는 삶에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에 적용되는 말이다. 한때는 '사랑을 주다'면 만족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산적도 있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얻게되는 사랑이 어떤 방식이냐의 차이였을 뿐 결국 나는 '사랑받기 위해 살아간다.'


아마도 어린날의 수많은 실수는 '주기위한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에 '사랑한다' 말하지 않은데에서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사랑이 떠나가는 걸 애초에 만들지 않겠다며 일정한 거리 밖에서 '주기만 하는 사랑'을 고집했으니까.


어떻게 포장하던간에 짝사랑이라 함은 운에 기댄 인연을 바라는 멍청한 사랑일 뿐이지. 이뤄지지 않을, 이뤄지지 못할 사랑을 바라보며 결론짖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나는 사랑받고 싶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너에게 사랑한단 속삭임을 듣고 싶다

사랑의 몸짓을 바라보고 싶고 사랑에 빠진 너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

둘만이 느끼는 사랑의 언어를 만들어 가고 싶다

숨쉬듯 사랑을 느끼며 하루를 채우고 싶다



때문에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 말해야 한다. 말해야 했다.

사랑받을 자격은 내가 당신을 사랑함에 있기 때문이다.

주고받음이 아니다. 순서가 있음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사랑받을 자격의 조건이다. 행하지 않는 사랑은 미련하고 바보같으며 아픔만이 존재하는 과거가 된다. 행하는 사랑은 풍족하고 아름다우며 현재와 미래를 그리는 은하수 별빛의 물감이다.








사랑받고 싶어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수십번 수백번 수만번 되뇌이고 소망하고 기도한다. 나의 부족함과 모자란 사랑에도 나를 사랑해주길 감히 욕심낸다. 아가페적인 사랑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내가 표현한 사랑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랑을 내가 받길 함부로 욕심내 본다.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을 잊고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애원하듯 고백함으로써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구걸한다.

마치 백지의 바다에 던져진 SOS신호가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커다란 함선을 이끌고 나를 찾아와주길바란다.


다를게 있겠나.

나와 네가.

우리는 솔직해져야한다. 솔직하게 고백해야한다.

'사랑받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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