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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의미 너라는 위로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우리의 세계

by 숨결



저무는 저녁에 집으로 걸어가는 저물어가는 젊지 못한 나는 죄인이다


아직 불이 환한 빌딩을 떠나

술내음 가득한 전철을 타고

아는 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는 나는

왠지 세상의 한 톱니로 완성되지 못한 죄인인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은 나를 잃어버릴듯 바쁘게 지나갔는데

지나간 시간은 텅 빈것마냥 아무런 기억도 만족도 없는 하루

내가 나인지 네가 너인지 모를 우주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렴 어떠냐

현관문 열어 잠옷도 채 입지 않고

팬티바람으로 아빠왔다 달려오는 네가 있는데


아무렴 어떠냐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어미의 품에 안겨서도

안아달라 팔을 뻗는 네가 있는데


땀과 먼지에 찌든 와이셔츠도 벗지않고

씻고 오라는 마누라의 핀잔에도

나는 너를 내 품에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것처럼 안아본다


바로 여기

이곳에서 만큼은 나는 죄없는 순수함이다










eb8ba4ec9ab4eba19ceb939c-23.jpg 벽돌을 들고 있어서 널 안아줄수가 없어 / 벽돌을 내려 놓으면 널 키울수가 없어








이 순간을 위해 살아간다
아니
이 순간에 살아간다



잠시 한걸음 쉬어가며 주변을 둘러본다.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훌쩍 커버린 아이가 있는 녀석들까지 생겨버렸다. 나는 아직 미혼이고 오래지않은 전까지 비혼주의자였으며 지금도 결혼이란것에 기대보다 두려움이 많다. 한편으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도 그만큼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내편'이 아직 많다라는 생각으로 안일함에 젖어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잔의 술로 씻어지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마찬가지겠거니 여기고 살아왔다. 가정을 이룬 친구들의 행복을 자로 재듯 홀로 살아가는 삶과 구태여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얻으려 했었을까. 아직도 남자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그들의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한편으로 동정했다.


하지만 삶은, 그리고 사람은 머리로는 이해해지 못하는 본능적이고 태생적인 사랑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잊고 있었나보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허풍스럽게 내뱉으며 그들의 사랑을 하찮게 여겼나보다.


그런 마음이기에 아주 단순하게 하고픈 말들이 어려워진다. 글이 어지러워진다.



아주 단순해. 그냥 사랑이야



일이 생겨 한시간 거리에 있는 형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문득 조카녀석들이 생각나 형수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다음날 떠날 여행 준비가 한창이었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리겠노라 언질들 하곤 두어시간 뒤에야 도착했다.

조카들은 둘다 여자아이들인데 첫째 조카는 이제 네살이 되어 한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둘째 녀석은 조금 있으면 돌이 다되어간다. 한창 말이 많아진 첫째 녀석은 웃고 떠들며 장난치기에 정신이 없고 둘째는 자주 얼굴을 비추지 못한 탓인지 아직 낯을 많이 가리며 나를 피한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잠시잠깐 아이들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티 없이 맑은 반짝이는 눈에 아이들의 웃는 모습 찡그리는 모습, 조곤조곤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입모양 하나하나가 보인다. 아 이런거구나.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 많은 아이에게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된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하고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고단한 직장과 불안한 미래를 어찌 등에 이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민은 무겁기만 하겠지. 하지만 아무렴 지금 내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의 행복에 비할까. 이것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아픈 삶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쌓아가는 시간에 고난과 아픔은 잊자. 잊어버리자. 아무도 모른척 잃어버리자.

그저 하루 한시간도 안될 시간이더라도 내 사랑을 눈앞에 두고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아가고 기억하자.

나는 몇십년의 삶을 너저분한 무언가로 채워가기보다 지금 이 순간만이 내 삶의 전부인것처럼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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