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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쓰다. 시는 쓰인다

쉽게 쓰여진 시

by 숨결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쉽게 씌어지는 시






지구별을 담은, 찬란한 별빛들이 반사되어 비치는

그대의 헬멧속

그대의 눈빛에 우주가 있다


온전한 어둠 안에서

닿지 않는 별빛을 향해

발디디지 못하는 행성을 향해

그대는 서두를것 없는 작은 몸짓으로

깊은 우주를 유영한다


그대의 소박한 움직임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우주복으로 감싸안아진 그대의 몸은

이미 우주 가운데서

누군가 떠밀어준 빠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우주인 그대도 느끼지 못했던

우주인 그대를 바라보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거칠고 빠른 흐름속에서

그대는 닿을리 없을거라 믿었던

찬란한 별빛 속으로

광활한 대지를 가진 행성으로

우주에 감싸여져 흘러가고 있다


감은 눈보다도 어두운 우주 속에서

자아를 잃은 움직임과

길고 긴 독백과

깊고 깊은 고독 속에

눈물조차 무의미해지는 그 순간에도

그대는 흘러가고 있다


우주인의 작은 몸짓은

저 멀리 별을 향해 날아가기 위한

목적지로 항해하는 그대만의 러더




그대여


그대의 삶이 흘러가는 동안

그대가 몸부림치는 지금에

손에 잡히는 무엇이 아무도 없다고

움츠러들고 좌절하지 말자


그대의 지금은 저 찬란한 행성을 향해 날아가기 위해

방향을 잡는

초라하지만 중대한 움직임이니



무제-3.jpg



Drawing by Yoon






쓴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써 옮기는 것이 습관이 된 어느 때


기억나지 않는 과거 덕분에

지금의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사는 것인지

그저 살아가는 와중에 글을 쓰게 된 것인지

답을 내릴 수가 없게 되었다


허나 명백한 것은

'글을 쓴다'

그리고

'시를 쓴다'

에 거짓을 담고 싶지 않다는 것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했다



삶을 알지 못하는데

살아가는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데

사랑을 글로 담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당신과의 관계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삶을 알고자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삶 속을 항해했다

한 분야의 외곬수 보다는

삶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싶었다


사랑을 알고자

사랑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성에 같힌 공주를 구하는 기사처럼

순수한 집념으로 사랑하고자 했다


사람을 알고자

당신을 바라보는 편견을 내던졌다

어떤 곳에도 사람은 있었다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친구가 되었을 때 나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 이 어둡고 숨막히는 현실에도

가는 명주실 한가닥 손에 감아 쥔듯

나와 당신을 위로할 시를 쓸 수 있음에

삶의 희망을 감싸쥔다




그런 시간의 뒤안길에서

시를 쓰는 이들은 알게 된다

알고 있다

그리고

느끼고 있다



시는 쓰려 한다고 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가는 모습이

영혼의 울림으로 환희 밝혀져

손 끝에서 그저 씌어질 뿐이다






그대들이 시를 쓰는 이유




류시화 시인


시는 인간 영혼의 자연스런 목소리다.

그 영혼의 목소리는 속삭이고 노래한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이

곧 시다




시의 본질적인 모습은 내면의 소리다


류시화 시인은 삶을 멈추라고 한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시를 쓰기 위해서느 삶은 무의미하다는

단연코 아니며, 쉽사리 그런 오해를 할 이도 얼마 없을 것이다


'듣는 것'은

삶의 한순간의 '쉼' 또는 '휴식'을 의미하며

듣기 위해 말하는 자. 소리내는 자 역시

나 스스로를 의미한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질 시간을 가지라'

단순히 시를 쓰기 위함이 아니다


잠시 멈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지도를 펼쳐들어

다음의 행선지를 정하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고귀하고 숭고한 일이다






김승희 시인


절망 속에 숨겨진 희망,

남들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발견이다



등단 44주년, 열번 째 시집을 맞이한

김승희 시인은

대중들에게 희망을 건내고자 하는

시들을 주로 쓴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좌파,우파,허파 등

언어유희적 시를 통해

장난스럽지만 그 속에 담겨진

눈치채지 못한 단어의 뜻을

한껏 뽐내며

이를 알아챈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꿈틀대다 말 안에

'꿈'이 있듯



그녀의 시를 쓰는 목적은 분명하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표현하기 위해

그녀가 사용하는 주제어들은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것이 없다




사람들의 공감을 위해서일까?



아니

주변의 일상적인 삶 속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표현일테다


시를 쓸 수 있다는

하지 않은 말일테다








도종환 시인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내가 처절하게 아파하며 쓴 시라야만

남들도 함께 아파하면서 읽고

함께 공감한다



도종환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고

시대 속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내왔다

근현대사의 투쟁의 역사와 아픔을

노래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결국, 그의 시는 삶이었고

사람이었고 시대였다


시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씌어지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씌어진다

이는 '나'의 존재는 '사회와 우리'에 속한 일부이므로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


시를 쓰기 위한 영감을 위해

특별한 경험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을 통해 얻는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 속에는

이미 많은 영감이 담겨있다




삶이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함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끄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특별함을 만들고자 한다



시는

특별함을 폄하하지 않는다

특별함을 위해 나아가는

그대들의 삶 속에


특별함을 만들어가기 위한

지치고 나약해진

그대들의 희노애락을


시인의 평범한 희노애락으로

감싸안아 위로한다




김정자 시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통해

김정자 시인의

'시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들숨 날숨

숨을 쉬듯

마음의 호흡을 해야 했기에

시를 쓴다


타의든 자의든

세상의 일들을

들숨으로 받아들이고

날숨으로 흘러보내야 하는

그 호흡이 시가 되기에


나는

시를 쓴다




김정자 시인이 말하는

'시를 쓰는 이유'는

시는 '씌어진다'란 표현에

가장 적합하다



시를 쓰겠다는

강렬한 열망은

구태여 필요치 않다


그저 숨을 쉬듯 살아가고

숨을 쉬듯 시를 써내려간다


시를 쓰는 것은

삶을 이야기하는

표현의 방식일 뿐이며

그 표현은

사람과 사람을

사랑으로 위로하는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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