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재능기부 수업을 오가던 어느 날 원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눈에 띄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있어요. 따로 배워볼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망설였다.
이미 하고 있는 수업도 있고, 개인 작업들에 집안 살림도 버거운데 따로 시간을 내어 수업을 하려니 선뜻 나서지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거절할 수 없었다.
‘보육원에 그 많은 아이들 중 원장님이 직접 부탁할 아이 정도면, 뭔가 있는 아인가 보다.’
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를 만나러 갔다.
또래보다는 작은 체구, 경계심 어린 눈빛에 허리 뒤로 감춘 자동차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들고 나타난 아이는 낯선 아줌마와의 만남을 어색해 했지만 환한미소로 내 소개를 하자 점점 표정이 풀렸다. 왜 그림을 배우고 싶냐는 질문에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데 어른이 되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 그림을 배우고 싶다 했다. 이후 우리는 그림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진로 이야기로 넘어갔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상상력과 영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아마 아이에겐 잔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수다스러운 내 모습이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경계하던 눈빛은 서서히 사라지고 사실은 영어는 점수가 바닥이고, 책도 잘 읽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는 건 재밌다며 하지만 공부는 꼭 하겠다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아이의 고민에 선생님도 중학교 때는 영어를 너무 못해 시험 점수가 바닥을 쳐서 영어선생님께 맞은 적도 많았다며 선생님에게 맞는 게 무서우면서도 왜 그리 공부를 안 했는지 모르겠었다며 내 이야기를 하며 웃어 넘겼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아차, 잔소리가 너무 길었나 싶을 무렵, 아이가 입을 열었다.
“왜 때려요?”
놀라고, 화난 목소리였다.
"전 선생님이 그때 영어 시험 못 쳐서 맞았을 때 느꼈을 공포를 이해해요. "
아이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정색한 이유를 곧 알게 됐다.
아이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여섯 살 무렵, ‘이렇게 맞고 살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느꼈고,
열 살 될 무렵엔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는 자신이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해 아버지를 피해 지금 이 시설에 들어온 것이라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감지했다는 말에 나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시험 못 쳐 몇 번 맞은 나의 이야기와 비교할 수도 없는 폭력을 겪은 아이가 너무나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그리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해 준것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하지만 나의 눈물이 혹시나 아이에게 동정으로 비칠까 마음이 쓰였다.
최근 희망에 부풀어 기운차게 연 화실의 대출금을 갚아내는 일이 너무 힘겹고, 일과 집안일 병행하는것도 그리고 글쓰기와 그림까지 뭐 하나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나는 무기력에 잠식당한 채, 하루를 폭식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부끄럽지만 보육원 원장님의 연락이 왔을 때도 내가 지금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낼 그런 형편인가 싶어 만남을 망설인 이유도 있었다.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곳에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한 아이를 만났다.
빛을 향해 손을 뻗은 아이의 절박한 의지가
무너져 가던 내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말한다.
아이야,
네가 나를 깨웠듯
나는 너를 피어나게 하는 사람이길.
내 작은 손재주가
너의 삶을 환하게 비추는 불빛이길.
누구에게나 삶을 다시 피워내게 하는 인연이 있다.
나는 오늘 그런 아이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