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바지자락 뒤에 숨은 두 아이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오다가 먹었다는 짜장밥이 닦이지 않은 채 볼에 작은 점처럼 남아 아이들을 더 개구지게 만든다.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 대신 두 남매를 데리고 온 이는 외할머니였다. 나이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 과연 이 꼬물이들과 한 시간 반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스쳤다. 다행히 어머니는 기법보다 “즐기고 힐링하는 미술”을 원한다고 했다.
그 말에 조금은 걱정을 덜어내고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네 살 동생은 변기 위에 앉힐 때도 손을 잡아줘야 할 만큼 작고,
여섯 살 오빠는 든든한 척하면서도 과자 한 개가 누구에 더 가느냐에 따라 감정이 금방 얼굴에 드러나는 나이라 금세 표정이 달라진다. 이런 아이들과 수업한지 이제 반년이 지나간다.
저녁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화실 밖에서 두 아이의 웃음이 먼저 들린다.
그 뒤로 “조심해라”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할머니 목소리.
계단을 단숨에 올라와 문을 열며 “짠” 하고 등장하면
나는 놀란 척 연기를 해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둘은 또 한 번 깔깔대며 넘어간다.
핑크에 빠진 네 살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자기의 발을 보라 내 손을 잡아끌고,
공룡 바지를 입은 오빠는 다리를 뻗어 얼마나 멋진 바지를 입고 왔는지 으쓰대며 내게 보여준다.
이렇게 하루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수업이 시작된다.
책상 위 재료를 보자마자 뭐 할 거냐고 재촉한다. 기다림이 어렵고, 가만히가 어려운 나이.
준비해둔 재료를 뒤섞고, 색이 번지는 걸 재미있어하다 보면 바닥과 앞치마가 어느새 물감으로 가득해진다.
내 두 눈은 늘 아이들의 손과 발이 향하는 곳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 하는 순간도 있다.
화실 옆 작은 화장실로 향하면서도 ‘아무 데도 가지 마. 금방 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아이들을 확인한다
후다닥 돌아오면 그 허둥거림마저 두 아이는 또 웃음으로 받아낸다.
색칠을 시작한 지 몇 분도 지나지않아 “팔 아프다”며 한숨 쉬고,
수업이 지루한 날이면 할머니가 언제 오냐며 시계 보는 시늉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몇 시냐”고 물으면, 둘은 말도 안 되는 숫자를 당당하게 말한다.
지난 수업에서는 크리스마스 집을 만들었다. 작은 집 모양의 반제품을 건네자 네 살 아이는 연신 물감을 가져다 놓고, 오빠는 곳곳에 색을 얹으며 자기만의 집을 만들어갔다. 반짝이는 조명을 넣고 화실 불을 끄는 순간, 알록달록 전깃불에 또 환호성이 터진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할머니가 아이들을 데리러 오셨다. 둘은 앞다투어 자신이 만든 집을 흔들어 보이며 제 것이 더 멋있다며 재잘거린다. “아이고 정신없다” 하시면서도 할머니 눈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나는 “이런 걸 자꾸 만들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고, 할머니는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며칠 전시해놓고, 안 볼 때 버린다”며 눈을 깜빡깜빡 거리신다. 할머니는 좀 전 들고온 검은 봉지 하나를 화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농사하다 남은 거다, 맛보라”는 말만 남긴 채 아이들을 챙겨 후다닥 화실을 나선다.
늦은 저녁.
몸이 가장 무거워지는 시간인데도 두 아이의 웃음과 할머니의 온돌같은 마음덕에 스물스물 힘이 다시 살아난다. 아이들이 남긴 웃음과 온기가 이 저녁 작은 화실 안에서 오래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