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 전, 한 아이의 부모님이 화실을 찾아왔다.
아이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미술수업 상담을 위해 시간을 내어 온 것이었다.
보통은 아이를 데려오거나 전화로 수업 문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 아빠가 함께 찾아와 아이들을 어떤 기준으로 가르치는지, 수업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 나의 교육관을 묻고 화실 분위기도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교육열이 높은 분들이구나 싶었다.
부모의 말로는 아이가 원래 미술을 좋아했다고 했다.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 곧잘 그리고 만들기를 즐겼기에, 제대로 한 번 가르쳐 보자는 욕심으로 집 근처 미술학원에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이는 잘 적응하지 못했고, 몇 달 후에 미술이 싫다며 절대 학원에는 가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후로는 집에서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바로 정규 수업에 들어가기보다 체험 수업을 먼저 해 보자고 했다.
아이가 우리 화실 분위기를 좋아할지, 강사와의 호흡은 어떤지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나의 이런 제안을 부모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체험 수업 날, 엄마 손에 끌려 온 아이는 화실 문 앞에서부터 미술이 싫은데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해서 왔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미 다른 미술학원을 싫어해 그만둔 경험이 있다 보니, 아이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고, 그리는 내내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수업과 상관없는 질문을 쏟아내고, 몇 시에 집에 갈 수 있는지만 반복해서 물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림보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미술이 싫어졌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말했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면 못 그렸다, 틀렸다, 다시 똑바로 그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어떤 때는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며 선생님이 손등을 때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미술학원은 ‘잘해야 하는 곳’, ‘실수하면 안 되는 곳’이 되어 있었다. 이런 대화들이 아이의 마음을 조금 열어주었는지, 아이는 일단 우리 화실을 다니겠다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는 아니다.
그리기 기법이 뛰어나지도 않고, 결과물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만들기를 할 때도 망설임 없이 자기 손으로 어떻게든 완성해 보려 애쓰고, 그림에서도 보통 아이들이 쓰는 색을 피해 시커멓게 칠해 버리거나 엉뚱한 구도로 그림을 그려낸다. 대충 그린 것처럼 보여도 아이는 끝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잘 그리는 능력보다, 그리기를 계속 이어 가는 태도.
‘못 그린다’는 말 대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종이에 옮기려는 시도가 기특해 보여 나는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아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힐끔 들었다가 씨익 웃고, 다시 그림에 몰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고, 자리를 거의 뜨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도 곧잘 하고, 표현하고 싶은 방식도 서툴지만 꺼내 보이려 노력한다. 9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주변 아이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기도 한다. 결과물은 여전히 서툴지만 작업 과정과 태도만큼은 충분히 박수를 보내고 싶고, 부모님도 아이의 변화가 기특하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하신다.
어느 날, 화실 근처 학교로 전학 온 아이는 이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예전 담임선생님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엄마에게 “아이가 고장난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아이는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그날 엄마가 많이 울었으며 그 모습이 너무 슬펐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이보다 엄마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상담날, 부모님이 화실에 찾아와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셨구나 싶었다. 아이가 고장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너져 내렸을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를 매일 만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행동과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담임교사의 고충 역시 이해한다. 혼자서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교실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튀는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분명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면전에서 ‘고장났다’는 말을 해 버리는 것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문장이다.
아이는 화실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이어간다.
그렇다고 이 아이를 모범적인 아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아이는 고장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라는 시스템에 조금 서툰 아이일 뿐이고, 표현하고 말하는 방식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아이들은 고장나지 않는다.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교육은 아이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주는 일이어야 한다.
적어도 내 화실에서만큼은, 각자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