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한 알, 톡

by 수미

오동통한 볼을 물고 있는 다섯 살 아이가 짧고 둥근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단추와 낑낑댄다. 앞에서 보고 있자니 속에서 조급함이 올라온다. 내 무디고 큰 손으로 휘리릭 다 풀어주고 싶다. 금방 끝날 일인데, 그래도 참는다.


우리 화실 작업복은 꽃무늬 하와이안 셔츠다. 알록달록한 꽃이 온몸을 덮고, 어른 옷이라 아이들에게 입히면 원피스처럼 길다. 물감이 튀어도 괜찮고 팔도 적당히 가려준다. 미술 수업 때 작업복으로 입기엔 더없이 좋다. 대신 단추가 주르륵 달려 있다. 바로 요것들이 문제다.

수업이 끝날 무렵, 바닥에 흘린 물감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데 유치부 아이가 다가온다.


“선생님, 단추 열어줘.”

내 양손에 걸레가 쥐어져 있다. 잠깐 망설이다

“오늘은 해솔이가 한 번 해볼래?”라며 말해본다.

아이의 얼굴이 금세 울상으로 바뀐다.

“해솔이 못해. 단추 못 열어.”

그 말이 아이 입에서 너무 빠르게 튀어나와 오히려 웃음이 터진다. 다섯 살의 단호함이라니. 해보기도 전에 못 한다고 말하는 저 확신을 오늘은 바꿔줘야겠단 오기가 든다.


손을 씻고 돌아와 아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단추 하나 집고 구멍을 살짝 벌려 보인다. 그리고 마법사가 주문을 외듯 “단추야, 나와라.”를 반복하니 단추가 톡 하고 열린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아이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주문을 말해야 나와.” 하니 그제야 아이는 다시 웃는다.

“이제 나머지 세 개는 해솔이가 해보자.”

아이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진다. 조막만 한 손이 단추를 꼭 쥔다. 그러곤 삐끗삐끗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단추야… 나가라.”

그 순간.

톡.

단추가 열린다.

아이는 팔짝 뛴다. 나는 박수를 친다. 우리 둘의 요란한 함성 소리가 화실을 채운다.

마침 화실 문이 열리고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 아빠가 들어오신다. 왠 소란인가 궁금한 얼굴이다.

아이는 달려가 방금 이룬 위대한 일을 설명한다. 말이 엉키고 숨이 가쁘다.

“해솔이가 했어.”

나는 옆에서 위대한 일에 한몫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 남은 단추는 내가 열어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몸을 비튼다.

“해솔이가 엄마 아빠 앞에서 다 할래.”

한 덩치하는 어른 셋이 무릎을 굽힌다. 몇 초면 끝날 일을 몇 분 동안 마음 졸이며 기다린다.

작고 둥근 손가락이 단추를 밀며

“단추야. 나가라!” 마법 주문을 외면

톡.

그리고 또

다시

톡.

화실이 웃음으로 가득 찬다.


아침부터 일정이 빽빽했다. 수업도 많은 날이었다. 몸도 무겁고 마음도 지쳐 있었다.

그런데 단추 하나가 열리고 내 어깨도 함께 말랑해진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루가 이런 사소한 일들로 채워진다.

단추 하나 여는 일.

신발을 혼자 신는 일.

자기 이름을 끝까지 쓰는 일.

어른에게는 스쳐가는 순간이 아이에게는 온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다.


아이에게 단추 여는 법 하나 알려줬을 뿐인데 학부모는 고맙다며 초콜릿을 슬쩍 내민다. 괜히 어깨가 조금 올라간다.

화실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와 학부모의 발소리, 그리고 깔깔 웃음이 문 밖으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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