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김장김치를 얻어먹는다.
마트나 홈쇼핑으로 김치 사 먹는 집들이 많다지만 아직까지 친구들 중에는 친정엄마와 김장철만 되면 몇십 포기의 김장을 며칠에 걸쳐 정성스레 담기도 한다. 난 그런 친구들의 김치를 고맙게도 얻어먹는다.
오랫동안 베트남 살이를 했던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이별을 준비할 틈도 없었고 시기가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대라 임종도 보지 못했다. 다만 엄마의 집에 남아있던 반찬통 속 붉은 김치 몇 조각이 엄마의 마지막 손맛을 보게 해주었다. 엄마는 요리를 잘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을 나눌 줄도 알았고 된장이며 고추장을 손수 담가 바다 건너 사는 딸에게까지 알뜰살뜰 보내던 분이다. 물론 김치도 예외일 수 없었다. 비닐로 몇 겹을 싸서 국물이 새지 않게 단단히 묶어 보낸 엄마의 김치를 마지막 양념까지 긁어 먹었던 기억이 수두룩하다.
엄마를 보내고 엄마 손맛 담긴 김치가 사라지는 게 서러워 쉬어빠지는 김치를 두고두고 아껴먹었다며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해 겨울 한 친구가 김치를 가져왔다. 친정엄마와 육수를 우리고 배추를 절여 며칠간 만든 김장김치라며 몇 포기 챙겨 왔다. 김치를 받으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식탁 위 친구의 김장 김치통 뚜껑을 열어두고 한참을 울었다.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나는 12월이 되면 친구의 김장김치를 얻어먹는다. 파김치도 있고, 굴 향 가득한 굴김치도 있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해주던 갓김치까지. 친구는 김치를 전해주며 이건 먼저 먹는 김치고 저 김치는 익혀서 먹는 김치라며 살가운 설명도 덧붙인다. 사는 일이 바빠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고 가끔 안부를 전하거나, 잠깐 시간이 날 때 후다닥 커피 한 잔 들이켜는 사이지만 일 년에 한 번은 꼭 이렇게 김치통을 주고받으며 오랜 수다를 떨어댄다.
친구에게 김장김치를 받은 날이면 난 식구들 앞에서 으스댄다. 남편과 아이에게 이거 내 친구가 준거야. 나 김장김치 주는 친구도 있어.라며 괜히 목에 힘을 준다. 이날 저녁은 수육이 꼭 따라온다. 집 앞 정육점에 가서 김장김치랑 먹을 수육을 할 거라며 얼마나 사면 좋을지 사장님께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고기의 핏물을 빼고 마늘 대추, 파 등 맛 좋아질 재료를 듬뿍 넣고 삶아낸 수육에 새빨간 김장김치가 덮여 식구들 입안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마지막 김치를 먹으며 아이처럼 울먹이던 몇 해 전의 나
이제는 친구의 김장김치를 먹으면 아이처럼 헤벌쭉 웃는다.
슬픔이 사라진건 아니다.
다만 뻥 뚫린 상실의 자리에 붉고 따뜻한 친구의 마음이 덧대어져 겨울이 조금씩 포근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