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난 건 십 년 전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으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떨어진 베트남.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내 인생에서 베트남은 생각조차 안 해 보았기에 뜬금없이 밀려온 이 나라는 황당함과 서러움의 땅이었다. 먹고사는 일은 제쳐 둘 수 없기에 시장에 나갔다. 그때 그녀를 만났다.
낯선 내게 귀찮을 만큼 친근했던 그녀,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 자기 속을 다 보여 준 그녀. 난 그런 그녀가 막 싫진 않았다.
봉선 씨는 얼굴이 검은 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손과 눈 주변은 흰 편이라 인상이 좀 세 보인다. 사람들은 봉선 씨와 내가 닮았단다. 어디가 닮았냐 하니 눈이 닮았단다. 그러고 보니 봉선 씨 눈이 참 예쁘다. 그 예쁘던 눈에도 주름이 생겼다. 물론 내 눈가에도 무지막지한 까치발들이 쫘악 퍼져있다. 보톡스를 맞으면 좀 탱탱해지려나 하고 병원을 찾는다. 곱게 안 늙고 발악하며 젊어지려 용쓰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혼자 조용히 병원을 찾는다. 봉선 씨는 눈치가 빠르다. 시술이라도 받고 올 날이면 나를 애처로이 쳐다본다. 봉선 씨는 그런 미용시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곱게 늙어가고 싶은가 보다. 새치가 늘어나도 염색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거울도 잘 보지 않고, 특히 목걸이나 옷엔 관심도 없다. 행여나 예쁜 목걸이가 있어 선물해 줄 참이면, 바로 풀어버리며 귀찮게 한다는 표정으로 역정을 낸다. 그럴 땐 섭섭하기도 하다.
봉선 씨를 십 년 넘게 보아 왔지만 늘 같은 몸무게를 유지한다. 식탐이 없는 건 아니나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그녀는 기상 후 늘 스트레칭을 한다. 소식을 하고 가끔 과식을 할 때면 토를 하는데, 그건 좀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봉선 씨는 커피를 즐긴다. 내가 한국에서 들고 온 맥심 믹스커피를 타 마실 때면, 코를 벌름 거리며 한 잔 주면 안 되겠냔 눈치다. 그 당시 한국 제품은 귀했던지라 못 본 척하고 잠시 자리를 떴다 돌아오면, 내 커피를 슬쩍 마셔놓고 아닌 척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봉선 씨는 커피 마니아인가 보다. 최근에는 식은 아메리카노가 입에 맞는지 홀짝홀짝 마시더니 원두를 통째 아작 아작 씹어먹으며 커피를 음미하는듯하다. 나는 봉선 씨 따라가려면 멀었다.
봉선 씨는 늘 내 곁을 지킨다. 내가 좋아 내 곁에 머무는지 나한테 뭐 떨어질 거라도 있어 머무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봉선 씨가 참 좋다. 외롭고 낯설던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반기던 처음 그날.
봉선아 오래오래 살아라.
우리 봉선이